속박 끊기의 기록 (3) 횡설수설(잡상)

속박 끊기의 기록 (2)

- 이전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난 그 때의 다이어트 이후 지금껏 다이어트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식의 다이어트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간곡히 부탁하건데, 부디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굶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다면 절대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솔직히 아무리 운동을 해도 살은 안 빠진다. 식이 조절을 해야 빠지지. 그러다보니 극단적으로 식이를 줄이고자 하는 유혹이 자꾸 들텐데, 그럼 그 이후 평생을 그 후유증과 함께 가게 되거나 운이 좋으면 어느 정도(어느 정도다.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극복해서 나처럼 또 다른 사람에게 '굶는 다이어트는 하지 마라'라고 증언하고 있겠지.

- 지금 돌이켜보면 역시 그 때의 난 정상적이지 않았다. 다이어트 시작한지 몇 개월 지나서 내가 어느 정도 살이 빠지자 엄마는 내게 몸매 보정 속옷을 사 주면서 늘 입고 다니라고 말했다. 가슴을 꽉 죄는 브래지어 아래로는 뭐더라...일종의 코르셋 같은 게, 아, 니퍼! 니퍼라는 게 있다는 것도 거들이 있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엄마는 그걸 잘 때도 입고 자라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하고 그렇게 생활했다. 몸매 보정 속옷은 확실히 겉으로는 몸매를 좋아보이게 했다. 브래지어도 그렇듯, 처음에는 정말 불편하던 것도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오히려 나중에는 없으면 뭔가 허전하게 된다. 니퍼가 한 개라 빨아야 할 때는 압박붕대로 내 몸을 칭칭 감아 호흡 곤란이 와서 화장실에서 다시 풀고 감기도(!) 했다.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의 내가 왜 그렇게까지 내 몸을 학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뚱뚱하고 건강했던 나보다 스스로 학대당하고 이전보다는 좀 말라보이던 나를 주변 사람들은 훨씬 더 좋아해주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 그건 정말 엄청난 강화가 된다. 아무리 인간 다 죽어. 인류애 멸종했음. --이렇게 말하는 나라고 해도 나 역시 인간이고, 사회적 동물이다. 이왕이면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해주는 쪽이 훨씬 기쁘니까.

- 이 시기가 있었기에 깨닫게 된 것도 하나 있는데, 자존감이란 총체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몸에 대한 자존감은 다이어트르 하면 할수록 떨어졌지만, 그래서 전체적인 자존감 총량도 깎여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가 가치 없고 못난 존재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거든. 최소한 나는 성적은 정말 좋았고, 최소한 내 분야(학업이든 일이든)에서만큼은 그 어떤 사람보다 나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말 운이 좋게도 나는 외모와 상관없이 나는 남들보다 확실히 나은 점들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는 걸 쭉 알고 있었고, 어릴 때부터 온라인 세상을 접하면서 세상이 넓고 사람이 다양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책이 만들어준 내 자아도 확고한 편이었으니까. 덕분에 최소한 그 어떤 경우에도 내가 남보다 나은 점이 하나는 있다는 건 이후의 내게 큰 도움이 되는 점이었다.

- 그런데 이게 반대로 말하자면 외모가 가진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도 된다. 어지간해서는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자부하고 있었던 내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져 바닥을 칠 정도로 외모 품평질의 힘은 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거다.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매 순간 투쟁해야 한다. 한국에서 살면 끊임없이 살이 찐 너 자신은 사회에 속할 곳이 없다는 걸 알려준다니까. 옷 가게에 가면 내 취향의 옷이 있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이 옷가게에는 내게 맞는 옷이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더워서 짧은 치마를 입을라치면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려야 한다고. 꼭 나에 대해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마른 연예인들 두고 '쟤 요즘 살 찌지 않았느냐'는 품평질을 함께 들어야 하지. 그런 곳이 한국이다. 

- 내가 아무래도 다이어트를 하는 쪽의 심리상태만 반추하다보니 이 기간이 내게 참 암울하고 우울한 기간이었을 것 같은데, 의외로 또 그렇지도 않았다. 일단 근육이 빠지든 뭐든 일단 몸의 부피가 줄어들고 예쁜 옷을 좀 입기 시작하면서 대번에 주변에서 내 취급이 달라지더라. 그건 정말 기분 더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기분이 으쓱해지는 일안 것도 사실이다. 이 때부터 치마를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했는데, 내가 여성스러운 옷이 취향이라는 것도 이 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한참 망가지고 있는 과정 중에는 내가 망가진다는 자각이 없는 법이거든. 한 번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니까 음식을 먹고 토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절식에 가까운 식이 조절을 나 스스로 이어가고 있었다. 남들과 함께 있을 때는 음식을 먹되 혼자 있을 때는 거의 물 종류로만 연명하고 있어서 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누구도 내가 이 정도로 먹을 걸 끊었는지 알지 못했고, 성적도 여전히 잘 내고 있었다.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도 몸 문제만 아니면 나름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지냈고, 겉으로는 내 외모에 대해 신경 안 쓰는 척 얼마든지 가장할 수도 있었다. 

(4편으로 이어짐)

속박 끊기의 기록 (2) 횡설수설(잡상)


* 지난 글 : 속박 끊기의 기록 (1)

잠깐 다른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보자. 의외로 많이 구문을 못하는 것 같은데, 자신이 보통 체중 이상임을 아는 것과 그것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정확히는 내가 살이 쪘다는 걸 아는 것과 그래서 내 자신이 수치스러워하고 죄악감을 느끼는 건 별개의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외모 고나리질이 심한 나라에서는 살이 찐 사람들은 죄다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데, 완전히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후자가 사회적인 것이라는 건 같은 정도로 살이 찐 남자들을 생각해보면 금세 이해가 갈 걸. 요즘에는 남자도 드디어 외모 평가를 당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살이 찐 것에 대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다르다고.(물론 그래서 남자도 더 당해봐라는 게 아니라 둘 다 그런 외모 고나리질 좀 안 당하고 살면 안 되나?)
 의외로 내가 (주로) 엄마에게 그렇게 외모 지적질을 당하면서도 난 내가 살이 찐 게 문제라는 생각을 고등학교 때까지는 거의 안 하고 살았다. 왜냐고? 난 입학 이래 전교 2등 밖으로 밀려나 본 적이 없는 우수한 학생이었거든.(체육 실기 시험이 포함되는 중간고사에서는 전교 2등, 체육이 필기시험이 되는 기말고사에서는 전교 1등 이렇게 했다.) 이미 성적으로 내 자존감은 충분히 유지되고 있었고, 교류할 친구들도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별 신경을 쓰질 않았다. 게다가 그 때는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게 터부시 되던 시기기도 했고. 어디선가 들은 유머 비슷한 건데, '10대와 20대의 차이가 뭔 줄 알아? 10대는 화장하면 혼나고 20대는 화장 안 하면 혼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0대와 30대였던가. 뭐 그랬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정말 그렇다. 지금이야 중학생만 되도 화장 다 하고 초등학생도 화장에 관심을 보인다지만 뭐랄까. 내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화장이라든지 외모에 관심을 보이는 애=날라리, 불량학생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모범생인 난 외모에 관심이 없어야했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체중이 많이 나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특히 고 3때는 다들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뭐, 내가 아무리 둔감하다고는 했지만 아예 못 느낀 것은 아니다.(게자가 늘 상기시켜주는 사람이 내 보호자였다니까?) 그런데 그걸 정말 충격적으로 자각한 게 대학교 1학년 OT 때의 일이다. 별 생각없이 간 OT에서 난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OT마지막 날, 신입생의 단합을 촉진하겠답시고 선배들(지금 생각해보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2학년, 겨우 21살 짜리들이)이 고안해 낸 프로그램에서였다. 일종의 크라우드 서핑처럼 사람들이 무대 한 쪽 끝에 두 줄로 머주보고 늘어서서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 위로 엎드려서 끝까지 그 사람을 전달 전달해서 마지막에 내려놓는 뭐 그런 것이었는데, 그 때 나는 아무리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하는 거지만 내가 그 위로 올라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서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었다. 내가 받아봤지만 아무리 '보통 체중'의 동기들도 무겁더라고. 그런데 내가 올라가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거기서 선배들이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했으면 이게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충격적인 사건이지 않았을 거다. 선배 새끼 중 하나는 그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내가 하기 싫다는 말을 했다면서 그런 날 격려해 주잡시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고 싫다는 날 강제로 손을 잡고 등을 떠밀며 사람들 위로 던지다시피 밀어냈다. 아, 물론 내가 그 사건을 끔찍한 일로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이 왜곡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내 의사에 반해서 강제적으로 하게 된 것만큼은 확실하지만. 결과? 상상하는 그대로일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이 끊어지고, 난 땅에 떨어지고, 거기 있는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던 난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눈물이 나와 엉엉 울기 시작했는데, 그 선배 개새끼가 '괜찮아, 괜찮아' 하며 다시 한번, 이번에야 말로 성공하자며 다시 날 떠밀었지. 순수한 선의로. 
 
 그렇게 난 뚱뚱한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날 외모로 평가할 수 있다는 걸 이렇게나 크게 자각하질 못했다.
 그 전까지는 내 말이나 행동을 보고 날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할 거라고 생각했지 
 단지 체중이 많이 나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이 비참해 질 수 있는 줄 알지 못했다.
 그 때부터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나가기 싫어졌다.

- 이런 일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와중에 어느 날 엄마와 동생이 역시 내 의사를 그닥 존중하지 않은 채로 다이어트 한약을 주문해놨다. 아주 비싼 거라고, 이제부터는 밥도 먹지 말고 이것만 먹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첫날에는 지사제를 거의 10알인가를 먹여서 일단 '숙변'이라는 걸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물도 많이 말아야 하며 하루에 정해진 양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거 완전히 몸을 작살내는 아주 나쁜 방법인데, 그 때 무슨 생각인지 오기같은 게 생겼다. '그래, 내가 딱 한 번 엄마가 시키는 것에 협조해주겠어.'라고.

 인체에 대해 조금의 상식만 있어도 알 수 있다시피, 이 다이어트는 체중이 줄어든다는 점에서만큼은 효과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방법이다. 일단 지사제를 먹여 수분을 빼내고 그 이후 절식을 하며, 수분 공급을 제한한다. 그렇다면 당장 탈수 증상이 온다. 즉, 빠져나간 수분만큼 체중이 팍팍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나서 거의 칼로리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운동을 안 해도 자연스럽게 살이 빠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을 나는 6개월 이상 지속했다. 이 쯤에서 '어떻게 저런 방법을 지속할 수 있었지?'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 정답이다. 나는 음식을 '몰래' 먹었다. 그러니 6개월이나 (일단 집에서 보기에는) 절식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처음에는 정말 굶어봤는데, 배가 고파서 안 되겠더라고. 어차피 24시간 감시를 받는 것도 아닌 몸, 집 밖에서는 몰래 식사를 하고 집에 있는 시간에는 굶는 척을 했다. 

- 굶는 다이어트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당장 인터넷에 '굶는 다이어트'로 검색만 해 봐도 줄줄 나온다. 그 부작용을 나도 겪었다. 아무리 밖에서는 몰래 먹는다고 해도 그 양이 제한적이라 칼로리는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늘 기운이 없고 짜증이 나 있었다. 이내 신체적인 증상도 나타나 있었다. 소화기계에 탈이 나기 시작했고,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빠지기 시작했다. 손톱이 갈라지고 피부가 푸석해졌다. 뭐 기타등등, 기타등등. 상상할 수 있는 굶는 다이어트 부작용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대부분 겪었다고 봐도 된다. 그 때 손상된 체력은 아직도 회복이 되고 있지 않다. 
 그 전까지 나는 뚱뚱하긴 했어도 건강했다. 비록 100m 달리기나 철봉 매달리기나 제자리 멀리뛰기 같은 순간적으로 근력을 끌어내야 하는 것 같은 종목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지구력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오래 달리기를 하면 대개 다들 출발할 때는 열심히 뛰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 느려지거나 걷기도 하지만, 난 비록 출발할 때는 빠르게 뛰어나가지 못해 꼴찌로 시작하더라도 출발할 때의 속도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아 늘 상위로 들어왔었다.(그걸 본 체육 선생님이 내 기록을 믿지 못해서 내가 한 바퀴를 덜 뛴 줄 알기도 했다) 교내 마리톤 대회에서는 전교 15위 안으로 골인하기도 했었다. 윗몸 일으키기도 늘 최고 점수를 받았다. 속도는 느리자만, 시간 내내 그 속도가 안 떨어졌거든. 이 모든 체력이 박살이 났다. 근육이 작살이 난 거지.

하지만 정말 큰 후유증은 정신적인 것이다. 벌써 그 때로부터 10년도 넘게 지났는데 정신적인 부작용은 아직도 겪고 있다. 일단 음식을 먹으면 죄책감이 든다. 그 전까지는 음식을 먹을 때 핀잔 정도 들었다면 '굶는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나서는 하다못해 물도 집에서는 많이 마시면 나쁜 일,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 다이어트가 시작되고 내가 음식을 몰래 먹기 시작한 건 채 일주일이 되지 않을 때부터였는데(인간이 어떻게 물만 먹고 일주일을 버티겠어.), 아무리 몰래 먹더라도 6개월을 그런 식으로 보내고 나니 건강이 완전히 망가져서 더 이상 지속하지 말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나서야 겨우 나는 다이어트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체중은 꾸준히 회복되어 난 다시 예전의 체중(고 3때 피크치 말고 그 이전의 체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 번 잃은 건강은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고, 깊이 새겨진 정신적인 문제는 지금도 남아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단 음식을 몰래 먹는다는 건 자존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미 시작해버린 이상 또 내 자의로 이걸 어떻게 멈춰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몰래 먹으면서도 그래서 체중이 늘면 어떻게 하는지 걱정부터 해야했고, 혹시라도 엄마나 동생과 마주쳐서 들키면 어쩌나 싶어 전전긍긍해야했다. 그 때는 정말 살기 위해 먹어야 했는데, 한 입 한 입 죄책감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정체기가 와서 체중 검사(그랬다. 난 체중 검사도 당했다. 이거 뭐 연예인 지망생도 아닌데..) 때 예상만큼 줄지 않으면 '혹시 너 뭔가 몰래 먹는 거 아니지?'라는 말에, 어쩌면 그냥 한 번 던져본 말일 수 있는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 그 뒤로? 일단 먹고 나서 토하기 시작했다. 일단 먹고서는 기분이 나빠지니까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점점 효과적으로, 목에 상처를 내지 않고 구토를 능숙하게 유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후유증이 남아 있어서 적당히 먹으면 괜찮은데 과식을 했다 하면 속이 불편해지면서 구역질이 나온다.(내가 토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정말로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소화 능력이 그 이후로 더 이상은 그 이전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정도로 망가져버렸거나 정신적인 것이나 아니면 둘 다겠지. 
 
- 이 때 부터 생긴 게 바로 음식에 대한 양가감정이다. 흔히 살찐 사람은 식탐이 있을 거라 생각하던데 의외로 꼭 그렇지는 않다. 의외로 난 많이 안 먹고, 일단 '배고픔'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냥 세 끼 제 시간에 들어오면 추가적인 것은 먹어도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 그런데 다이어트 이후 음식에 대한 갈망이 주기적으로 폭발하는 걸 느낀다. 이미 배가 부른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밀어넣는 일도 있었고(이건 최근에 고쳐가는 중), 배고픈 걸 점점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배가 고플 때는 음식 생각이 강렬하게 들면서 막상 먹고 나면 반사적으로 기분이 나빠진다. 이런 기분은 다이어트 전까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3부로 이어짐)

속박 끊기의 기록 (1)

- 최근 방치한 블로그라 오히려 부담이 없으니 뜬금없이 자기 고백을 해 본다. 내 자신을 위한 글이고, 또 내 생각을 정리하고, 여기서 매듭을 한 번 짓고 가기 위해 남겨놓는다. 그렇다면 굳이 메모장에 적어놓고 날려도 되는 걸 공개적으로 쓰는 심리는 또 뭔지. 적당한 관심병이라고 해 두자. 그리고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위안을 얻고 조금씩 변하게 된 것처럼, 누군가도 어쩌면 내 기록을 읽고 위안을 느끼거나 심지어 조금은 용기를 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

- 중학교 2학년을 전후한 잠깐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전후한 잠깐을 제외하면 난 늘 뚱뚱한 사람이었다. 뭐, 지금도 그렇다. 이 말을 하는 건 내게 참 힘든 일인데, 내 입으로도 아니고 내 손으로 '뚱뚱'이라는 타이핑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외로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 당연히 어릴 때는 내가 뚱뚱하다는 자각이 없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뚱뚱하다는 것을 자각한 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고등학교 이상의 시기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처음 내가 뚱뚱하다는 식의 말을 들은 건 초등학교 때의 일인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걸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당시 사진을 봐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라고. 그리고 중학교 때. 의외로 한창 성장기인 중학교 시절에는 그냥 평범~통통한 체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중학교 2학년 때는 다이어트를 하지도 않았는데 키가 자라면서인지 뭔지 오히려 교복을 줄이기 위해 수선집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살이 본격적으로 찌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가 아닐까.

-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엄마는 나를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부터(? 기억 정확치 않음) 늦어도 중학교 즈음의 나를 '뚱뚱한 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면 그 때부터 날 굶기기 시작했으니까.

-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몇 차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처음 자각한 '결정적 순간'은 내 나이 7살 후반, 8세 초반에 찾아온다. 그 때 나는 아버지 일 때문에 타국으로 가서 살아야 했고, 지금처럼 운송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가 엄마가 한국에서 미리 주문해 놓은 내가 읽을 책들은 내가 그 나라에 정착한 지 몇 달이 넘어서야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주변에 말도 통하지 않고 TV를 켜도 내가 모르는 언어만 나오고, 학교가 끝나도 누군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친구와 놀 방법도 없던 나는 그 집에 전에 살던 사람이 남겨놓고 간 한국어로 된 전과(그것도 4,5,6학년 용이었던 것으로 기억)와 몇 권 굴러다니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계몽사) 중 일부를 읽으며 단번에 읽기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하루에도 3~4권씩, 반복적으로, 하루종일 난 책을 읽어댔고 그 책은 빠르게 내 자아를 형성해줬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같잖지만, 국딩 2학년 시절 방에 홀로 앉아 '지금까지의 내 삶을 정리하는 글을 써야겠어'라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나니까.(으아아아아!! 이불킥! 이불킥!!!!)

- 뜬금없이 이 이야기가 왜 나오냐면, 엄마의 말에 따라 다이어트하는 게 전혀 온당하지 않다고 그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다는 거다. 원래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부모님 말 잘 들을 것 같은 참한 아이고(어른 기준에서), 동생은 사사건건 반항하는 아이일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였거든. 난 조용히 부모님 말을 들은 뒤 그 중에서 내 판단에 옳다고 생각한 것만 따르고 그 외에는 수동공격적인 방법으로 반항한 반면 동생은 일단 잘 안 들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여러 차례 말하면 결국 다 따라줬고, 의외로 부모님 생각에 별 토를 달지 않았더랬다. 그래서 난 다이어트를 거부했지만 6학년, 아니면 중학교 1학년의 미성년자 신분으로 양육자가 밥을 안 주면 아무리 용돈으로 딴 짓을 하려 해도 기본적으로는 굶는 수 밖에 없다. 특히 방학 때는 더 그랬다. 초 6 여름인가 중 1여름 때 엄마는 내게 포도 간 것 몇 컵 외에 내가 다른 음식 먹는 것을 금지했다. 그렇다. 원 푸드 다이어트를 강제로 시킨 것이다. 다행히(?) 이것은 내가 심각한 빈혈 증세를 보이면서 그렇게 오래지 않아 중단되게 된다.(아, 물론 내가 실제 느끼는 어지러움을 몇 배 과장되게 표현한 것도 있다. 난 그 때 이게 내 몸에 좋지 않다고 확신했거든)

- 하지만 엄마는 내 다이어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수시로 내가 뭔가 먹고 있으면 타박을 했고, 날 보면 다이어트 이야기를 해댔다. 지금 생각하면 반항심에 더더욱이나 난 다이어트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운동도 거부하고 식이 조절도 거부했다. 실제로 체중 조절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랬다.

- 이 모든 과정에서 내 자존감을 꺾는 말을 매 순간, 정말 엄마와 붙어 있는 거의 모든 순간 들어야 했다. 그게 꼭 폭언일 필요는 없다. 아마 살 찐 사람들이라면 다들 들어봤을 법한 말일텐데, '얼굴은 예쁜대 살만 조금 빼면...'으로 시작하는 '진심어린 것 같은' 말이라거나 걱정하거나 위로하는 말이라거나. 다들 한 번 이상 들어봤고, 내뱉기도 해 봤을 텐데?

- 이미 고등학교 때는 확실하게 부모의 사랑이 꼭 혈육에 대한 정만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분명 엄마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본인은 순도 100%의 진심으로 날 아끼고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교 순위를 놓치지 않고, 늘 장학금도 타 오고 상장은 상자에 보관해야 할 만큼 많이 타 오는 딸. 그래서 내 몸매가 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늘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몸매만 좋았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엄마의 애정과 '완벽한 딸'에 대한 욕망. 이 둘은 모두 순수한 진심이다. 그리고 늘 충돌하지. 그걸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엄마 집에 가면 날 먹이기 위해 갈비같은 '좋은(그래서 기름진)' 음식을 푸짐하게(심지어 엄마는 손도 크시다) 준비한다. 그리고 계속 먹으라고 권하며, 동시에 라면같은 거 먹지 말고 기름진 것도 먹지 말고 살 빼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밥을 먹기를 멈추면, 떡이며 과일을 권하며 운동 좀 하고 그래서 살을 빼야지라고 말씀하신다. 아이러니한가?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이게 두 욕구 모두 만족시키는 상황인 거다. 그리고 이런 풍경이 내 일상이었다.

- 아직도 난 외모에 깊은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내 마음을 지키려고 해도 끊임없이 매일매일 내 외모를 평가하고 있는 사람이 날 낳아주고, 내가 보기에도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영향을 안 받기가 더 큰 거 아닐까. 사실 엄마가 아니었어도 내 외모를 평가질 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었는걸. 한국에서 살면 다 그런 거잖아.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엄마가 최소한 날 예쁘게 봐 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오타낸 거 아니다. 엄마는 진심으로 날 정말 예쁘다고 생각한다. 살만 빼면. 나와 내 동생을 항상 '내 공주'라거나 '우리 공주'라면서(아직도!) 예뻐하고, 내가 정말 평생 들은 소리가 '우리 공주 다리가 얼마나 예쁜데. 그 예쁜 다리에 살이 쪄서...(말흐림)'이다. 엄마, 나 평생 이 다리로 살아왔어요. 심지어 잠깐 말랐던 시기에도 다리만큼은 살이 있었다니까요? 지금도 생각하는 게 엄마나 날 예쁘게 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줬다면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오히려 잠깐 잠깐 정말 '건강을 위해 운동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부담 없이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운동을 좀 할라 치면 호들갑스럽게 '아이고 우리 **이 운동하네! 그래! 좋아!'라고 해서 민망하게 만든다거나 내 체력 상 10분 전후로 하고 멈추면 '고작 그것밖에 못 하느냐'면서 다그치기보다는 차라리 무관심했더라면. 가뭄에 콩 나듯 '운동을 좀 해 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에도 그런 반응을 보기 싫어서 몰래 안 하는 척 숨어서 잠깐 하다가 포기하곤 했다. 내가 지금 운동을 안 하고 싫어하는 게 엄마 탓이라는 건 아니다. 난 그냥 어릴 때부터도 쭉 운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나가서 놀기보다는 책 읽는 게 더 좋았고, 학교가 끝나도 집에 바로 돌아오곤 했지. 하지만 그래도 피구를 좋아하고, 수영장에 던져 놓으면 몇 시간이곤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놀던 아이이기도 했거든. 하지만 내가 운동을 싫어하게 된 데는 분명 강제적으로 시킨 영향이 분명히 있다.

- 그 강제적으로 시키는 게 일반적으로라면 아동 학대에 가까울 만한 양이었으니까. 엄마는 한 번 하면 확실히 해야 한다는 성격이 있어서 어떤 것이든 내가 완벽하게 해 낼때까지는 그게 뭐든 끝내지 못하게 시켰다. 피아노 진도를 나가면 그걸 곡 하나 당 100번씩 치기 전에는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화장실만 갈 수 있었다.) 실제로 동그라미 10개씩 10줄을 그려주고 (그리고 예를 들어 브루크뮐러, 하농, 체르니가 있었다면 *3) 그걸 다 지울 때까지는 꼼짝없이 피아노 앞에 붙들려 있어야 했다. 그러면 운동은 어떻게 시키냐고? 줄넘기 300회, 운동장 10바퀴 등등 엄마 지정해 준 양(그게 무슨 트레이너가 권장한 양도 아니고 당신이 보기에 '적당한 양', 내가 느끼기에는 버거운 양)을 주고 눈 앞에서 그걸 다 하는 걸 보고 나서야 집으로 데려왔다. 운동장을 돌 때도 힘들어서 원이 조금만 안 쪽으로 들어오면 금세 호통을 들어야 했다. 어쩌면 이건 사랑일지도 모른다. 거의 매일 반항하는 자녀를 데리고 운동장에 데리고 나가는 건 최소한 당신은 날 사랑해서 그런 게 맞긴 하다. 문제는 그 사랑을 내가 원치 않았다는 거다. 그게 사랑이라면, 난 차라리 무관심을 바랐다.  

- 그렇게 내 안에 축적되고 있던 반항심과 좌절감과 분노가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표출되게 되는데, 그게 딱 내가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일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1부 끝)

잉여의 시간 하루하루(일상)

2017.7.31
- 최근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잉여짓이다.
 집에 와서 피곤한 몸을 침대에 던지고 한 손으로 트위터 타임라인을 죽- 넘겨 본 다음 남편 핸드폰을 들어 남편의 타임라인도 죽 읽는다. 그러다보면 아무렇지 않게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하다.

 물론 그 시간을 다른 데 쓰면 좋겠지.
 숨쉬기 말고 다른 운동을 한다거나, 이렇게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거나 일본어 공부를 한다거나 하다못해 그 중 아주 일부만 할애해서 트윗을 남긴다거나.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읽기만 할 뿐이다. 똑같이 읽는 거라면 차라리 사다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는다거나 만화책이라도 읽으면 좋을 텐데 그것도 하지 않는다. 트위터 타임라인 읽기는 정말 내가 최근에 발견한 최고의 잉여로운 활동이다. 뭔가를 생산하지도 않고, 의외로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읽고, 끝. 그 뿐.

 그런데 내겐 그런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오히려 가만히 멍 때리며 있는 것을 잘 못하는 내가 멍 때리는 것과 가장 유사한 활동을 하는 때가 그 때인 것 같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잉여하러 가야지. 

녹색당에 가입했다 하루하루(일상)

2017.5.2
(*일기 자체는 5/20에 작성함)
- 내가 처음 녹색당의 존재를 알게 된 게 언제더라. 아마 2012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 이 정당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가 집으로 온 선거 공보를 읽으면서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느니 하는 공보들 사이에서 환경과 동물 복지를 이야기하는 자그마한 팜플릿은 꽤 신선하게 다가왔었고, 내가 좋아할만한 정책을 내놓는 당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큰 정당과 달리 얇고 작은 공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좋아서 난 그 이후 비례를 찍을 때는 되도록 녹색당에 투표를 했었다. 사실 딱 이 정도였다.

 선천적으로 게으른 나는 내 관심 사항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무척 드물다. 일단 존재를 알고 나니 사회 이슈에서 녹색당의 활동을 알게 되면 아, 뭔가 활동을 하는구나 싶어 조금 더 관심을 뒀고, 한 때 내가 챙겨 듣는 팟캐스트에 광고를 낸 걸 들을 때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대선을 앞두고 고민을 하다가 녹색당에 가입을 했다. 나도 내가 왜 가입을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뭔가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반 정도는 충동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솔직히 녹색당의 모든 정책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녹색당의 모든 표현 방식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며 녹색당 내부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활동을 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 열심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후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더 커졌다가 대선을 계기로 나타난 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왕 가입했으니 지금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참고로 아래는 나도 이번에 알게 된 녹색당 강령 전문이다.
 (글 쓰면서 이제 알았는데, 이게 全文이 아니라 前文이더라.
 
 
<녹색당 강령 전문(前文)>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을 싹틔워 인류가 지구별의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초록빛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며,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우리는 지구별의 생명을 지키는 지구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등대이며,
 녹색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함께, 공기의 순환이나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생명의 고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공동체 돌봄과 살림경제, 협동과 연대의 경제 속에서 대안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성장과 물신주의, 경제 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정당이며,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넘어선 태양과 바람의 정당,
 문명사적 전환을 만드는 녹색정당, 반정당의 정당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정치는 기성정당과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편적 인권을 넘어 생활정치ㆍ다양성 정치ㆍ녹색정치를 통해 소수자와 생명과 자연을 옹호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으며,
 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녹색당과 함께 지구 곳곳에서 녹색전환을 실현할 것이며,
 이 길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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