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을 찾아서 하루하루(일상)

2019.12.13
* 글에 앞서...
 : 여기서 말하는 '붕어빵'이란, 전통적인 붕어빵, 다시 말해 지금은 안타깝게도 붕어싸만코에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가로:세로의 비율이 4:3에 가까운 전통 붕어빵과, 엄연히 전통 붕어빵과는 다른 음식으로 취급받았으나 지금에 와서는 전통 붕어빵을 밀어내고 길거리 어류빵계의 메인 스트림이 된 '잉어빵'을 모두 일컫는다. 그러나 분명 모양에서는 전통 붕어빵의 DNA를 담고 있으되, 크기가 작은 '미니 붕어빵'은 이 '붕어빵'이라는 단어의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또한 내가 '붕어빵'이라고 할 때 그 붕어빵은 오로지 팥 붕어빵만을 가리킨다. 슈크림 붕어빵은 슈크림 붕어빵이고 피자 붕어빵은 피자 붕어빵일 뿐, 붕어빵을 붕어빵이라고 할 때는 당연히 그 안에는 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나는 붕어빵을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겨울이면 붕어빵집에 가기 위해 늘 천원을 몇 장씩 카드 지갑에 넣고 다니며, 붕어빵을 먹기 위해 굳이 길을 돌아서 집에 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붕어빵 집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하면 일단 내 동선 안에 들어오는 붕어빵 집은 모두 한 번씩 가 보고 그 중 '올해의 붕어빵집(BOY, Bunguh-bbang Of the Year)'을 선정하여 뻔질나게 그 가게를 가는데, 그렇게 맛있는 집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추위를 싫어함에도 붕어빵을 먹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그 앞에 줄을 서게 되며, 추위에 손이 곱을지라도 붕어빵을 먹기 위해 장갑도 벗고 붕어빵이 손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아, 붕어빵은 왜 이리도 맛있는 것인가. 
 
 밀가루가 팥을 품고 있는 음식은 많되, 그 어느 것도 같은 맛을 내지 않는다. 붕어빵은 작고 고소한 땅콩빵과는 다르며, 곱게 간 앙금을 품고 있는 호두과자와도 다르며, 부들부들한 식감을 가진 국화빵과도 엄연히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붕어빵은 붕어빵만의 맛을 가지고 있다. 찬 바람은 매년 불어오지만, 편의점을 잡아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호빵과는 달리 우리의 붕어빵은 어째 해가 가면 갈수록 만나기가 힘들어지는고. 세월 앞에서는 모든 게 뜨고 진다지마는 못내 원망스러워지는 것이다. 
 
 대저 맛있는 붕어빵이란, 피는 얇고 바삭해야 하며 팥은 죄다 뭉개지 않고 적당히 통팥을 섞어 이로 깨물면 비로소 입 안에서 치아와 치아 혹은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적당한 탄성만을 남기고 부드럽게 으깨져야 한다. 또한 팥소가 너무 달아 설탕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팥 특유의 단맛을 보다 잘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요즘 유명하다 하는 팥빙수 위에 올라가는 팥과 같은 느낌이 나는 팥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으면, 그것이 제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가게마다 같은 공장제 반죽에 같은 팥소를 써서 각 점포마다의 특색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지마는 그렇다고 모든 붕어빵이 같은 맛인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렇기에 붕어빵을 어떻게 구워내느냐에 따라 차이를 더 잘 느낄 수 있기도 한다.

 국화빵은 겉면만 살짝 기름에 지져낸, 마치 막 구워낸 전의 바삭함과 같은 피와 찰랑거리는 속의 부들거림의 조화로 먹는 음식이지만 붕어빵은 그렇지 않다. 맛있는 붕어빵이라 하면 피는 반드시 바삭해야 한다. 눈으로 봤을 때는 진한 노란색에 비늘 무늬에 갈색이 도는 모양새라야 하는데, 혹여 만드는 이의 손이 서툴거나 마음이 느긋하지 못하여 비늘 끝과 몸통의 색이 연노란색으로 차이가 없는 붕어빵을 받게 되는 경우 역시 종종 있으니 그럴 때면 나는 방망이 노인을 재촉하지 않는 손님이 될 수 있거늘, 주인장은 어이 이리 마음이 급할까 한탄하게 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동안 나의 최애 붕어빵집이었던 곳이 있다. 할아버지 내외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거기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꽉꽉 눌러담은 팥에 바삭바삭한 피가 아주 일품인 곳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집에서 가장 맛있는 붕어빵은 막 나온 붕어빵이 아니라 붕어빵이 너무 많이 구워져서 2층으로 쌓여 있을 때 집어주는 붕어빵이었다. 어차피 팔릴 거라 그런 건지 그 집은 사람이 있든 없든 계속 붕어빵을 구워서 쌓아놓곤 했는데, 그렇게 느긋하게 구워놓은 붕어빵은 피가 아주 바삭바삭해서 딱 내가 좋아하는 굽기였고 사람이 많아서 줄 서서 먹게 될 때의 붕어빵은 갓 구웠으되 색도 미리 구워놓은 것보다 연했고 그만큼 미리 구워놓은 것보다는 흐물흐물했다. 물론 그럼에도 늘 평타 이상은 쳐 줬기에 나는 그 집을 정말 좋아했고, 사라졌을 때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비록 이 집이 사라진 해에 나는 이 집보다 더 맛있었던, 도서관 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팔던 붕어빵집을 만나기는 했지만 다시 찬 바람이 불어온 그 다음해, 그 집도 사라졌지.....

 
 ..........그런데 나 왜 글투가 이렇게 되었지?
 오늘 올해 첫 붕어빵을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아마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인권과 관리에 대한 단상(2) : 인권과 역차별


인권과 권리에 대한 단상(1) : 인권 교육을 듣다.

 * 인권(人權) :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평등 등의 기본적 권리.
 * 권리(權利) : 어떤 일을 자유로이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 법률적으로는, 일정한 이익을 누리기 위해 그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
- 출처 : 구글 사전

 저 강사님의 가장 큰 문제는 '인권'과 개인의 '권리'를 같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내 인권을 보장하라'는 말이 '내가 ~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말은 아니다. '권리'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자유로이 행하거나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힘'이지만, 흔히들 '내가 어떠한 것을 자유로이 주장하고, 그것을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힘'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고 사용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악플을 달고 사람들이 그에 대해 비판하면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이 말은 권리를 잘못 이해해서 하는 말이다. 표현의 자유(혹은 표현할 권리)는 악플을 달면서 이미 충족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사람을 향해 잘못되었다고, 그들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내가 어떠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이 꼭 그 권리 행사를 통해 이득을 본다는 말은 아니고, 이 경우에 악플러가 자신은 타인을 향해 비난을 하면서 자신은 비판받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나는 '서로 자기의 권리만 주장할 때 발생하는 게 역차별 문제'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역차별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저상 버스가 처음 도입되던 때를 기억한다. 저상 버스는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버스 형태였다. 일단 좌석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1인석이 많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는 1인석 역시 많은 좌석이 바로 접거나 치울 수 있는 형태의, 이전보다 '불편한' 좌석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버스가 '불편하게' 바뀌었다고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저상버스가 보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장애인에 대한 역차별인가? 오히려 그동안 과도하게 다수가 특권을 누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여성 할당제나 농어촌 특별전형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성인이 함께 달리기 시합을 하면서 어른이 더 늦게 출발하게 한다거나, 특별한 규칙(예를 들어 성인의 기록에 시간을 더한 것으로 계산한다거나...)을 적용하는 것을 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할 수가 있나? 권투나 격투기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높은 체급의 중위권 선수가 낮은 체급의 상위권 선수를 보며, '나랑 붙으면 질 사람이 상위권이라니!! 이건 나에 대한 역차별이다!!'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무언가에 대해 '이건 역차별이지!'라고 느낀다면 내가 기존에 그 상대보다 더한 특권을 누려왔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강사님의 말은 '역차별'이 실재하는 것을 전제한다. 그것부터가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애초에  인권은 권리와 완전히 같은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의 권리'인 인권은 권리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인권은 모든 권리의 바탕이 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따라서 나는 권리와 권리, 가치와 가치, 욕망과 욕망은 충돌할 수 있지만 인권과 인권은 충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개인도 자신의 '인권'을 포기할 필요는 없으며, 누구도 타인에게 인권을 포기하기를 강요해서도 안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비록 범죄자라고 해도 광화문에서 돌을 던지지 않는 이유이며, 전쟁 포로에 대한 고문이 비난받을 수 있는 이유이다. 때문에 인권과 인권은 충돌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여성과 남성의 인권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앞선 사례의 학생의 인권과 선생님의 인권 역시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다. 앞선 사례에서 가해 학생을 처벌하는 것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되는가? '여성'인 내가 그간 쌓인 울분을 풀겠다며 대뜸 애먼 '남성'을 폭행한다면 난 두둔받아야 하는 것일까? 인권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맞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맞다. 인권에 관련된 법은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는 방법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인권과 권리에 대한 단상(1) : 인권 교육을 듣다.


 얼마 전에 원내 교육이 있었다. 대개 이런 원내 교육날에는 으레 '오늘은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를 생각하게 된다. 교육하러 오시는 강사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매년 받는 교육이다보니 기대감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교육을 아예 안 듣기는 또 그렇고, 집중은 안 되고... 그래서 손으로는 낙서를 끄적이며 교육을 듣던 중이었다. 

 원내 교육의 첫 번째 시간은 인권 교육 시간이었다.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인트로가 지나가고(인권은 중요하고...그래서 이런 교육도 하고 있는 거고...류) 한창 교육이 진행되고, 내 딴짓도 한창 진행되고 있던 도중, 귀에 이상한 말이 들어왔다. 인권, 특히 인권법은 약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거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내게 거슬린 것은 그걸 말하기 위한 예시였다.  

 이 강사님이 교육 중에 어떤 사회복지사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이 끝난 후, 사회복지사님이 강사님을 붙잡고 "선생님, 제가 너무 억울합니다. 너무 억울해서 못 살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그 이 사회복지사님이 약속 시간에 늦은 중학생에게 훈계를 하자 그 중학생이 욕을 했다고 했다. 아마 이 욕이 퍽 심한 욕이었나보다. 그 욕을 들은 사회복지사님이 너무 화가 나서 마주 욕을 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중학생이 사회복지사님을 폭행했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할 수 있다시피, 그 중학생은 별 처벌도 없고, 사회복지사님께 특별한 보상도 없었단다. 그게 그렇게 억울하다고 했다. 나는 이 사례에서 사회복지사님께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환자들에게 부당하게 폭언을 들었던 것도 떠올랐다. 그냥 욕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멍해지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 상대가 한참 어린 중학생이라면 더욱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심한 욕을 들었으면 마주 욕을 했을까. 그리고 욕을 하던 그 순간에도 그 어린 학생에게 맞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 어떤 기분이었을지 잘 알 것 같기도 했고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짐작을 못 할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강사님은 그 복지사님에게 "복지사님, 선생님과 학생 중에 누가 더 약자인가요."라고 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내가 뭔 소리를 듣고 있나 싶었다. 설마 곧바로 저렇게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게 지금 폭행 피해자에게 할 소리인가? 피해자가 가해자를 왜 이해해 줘야 하는데?? 그런데 그 복지사님이 정말 이성적이고 착했는지 "학생이죠."라고 했다고 한다.(난 절대 저런 말 못한다.) 그리고 "그럼 제 억울함은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는데, 그 질문에 대해 강사님이 했다는 말이 나를 더 어이없게 만들었다. 강사님은 당신의 억울함은 국민 권익위에 신고하여 풀라고 했다고 한다. 세상에 .....

 권익위? 그래. 그런 거지. 프로토콜은 있지. 내가 환자에게 성추행 당하면 일단 상사에게 보고하고 경찰에 신고하면 되겠지. 환자에게 폭언을 당하면 세 번 그만하라고 한 뒤 상사에게 보고하고 나는 그 자리를 즉시 떠나 휴식 시간을 가지면 되긴 하지. 그래서 그게 현실에서 가능하냐고. 내가 저 '권익위에 신고하라'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절망을 느꼈을 것 같다. 그 복지사님도 알 것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마땅한 해결책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인권 교육을 하러 온 강사님 정도 되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혹시라도 좋은 조언을 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권익위 신고라니! 권익위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데? 내 직장은? 상사가 날 가만히 둘까? 또 내가 원하는 수준의 처벌과 보상이 이뤄질 확률은? 

 그리고 이 때부터 난 이 강사의 말을 열심히 듣기 시작했는데, 이어지는 내용이 (어쩌면 내가 이미 화가 나서인지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다 거슬렸다.저 예시 이후에 곧바로 "환자가 폭언을 하고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더라도 참는 이유는 뭐 때문인가요. 환자가 약자이기 떄문에 그런 거죠~"라고 하는데 정말 순간 손 들고 그건 아니죠!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받은 모욕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 순간에 환자가 약자라서 참은 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다 신고해버리고!!! 다 처벌 받고!! 내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 보고 싶었다고!!!! 나라고 뭐 욕할 줄 몰라서 못했는 줄 알아?! 직장에서 짤리거나 불이익 받을까봐 그래서 못 한거 아냐!! 내가 피해자라고 해서 병원이 날 보호해 줄 것 같냐고!!!! 병원이 나서서 날 보호해 줄 존재였으면 애초에 그 환자들은 나한테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역시 내가 화가 나서 꼬아 들었을지 모르지만) 더욱 가관이었다.

 의도는 좋았다. 강사님이 하고 싶었던 말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삽시다"라는 말이었을 거다. 하지만 내 귀에 들어온 말은 "서로 자기의 권리만 주장할 때 발생하는 게 역차별 문제예요." .......아니요, 강사님?? 그게 무슨?? 그러면서 82년생 김지영 영화 이야기 하다가 옛날에는 자기도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 세대 사람들은 안 그런다. 자기 권리가 중요하다보니 결혼도 안 하고(응?) 아이도 안 낳고(....뭐?), 그걸 YOLO라고 하고(네??), 그래서 저출산도 생기고... 아니 왜 이야기가 거기로 가? 듣는데 너무 화가 나서 손이 떨린다는 게 무슨 말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어서....)

호의는 권리가 아니다 고군분투(병원)

2019.10.24
-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부서는 대부분의 직원이 8시에 나와서 5시에 끝나고, 일부 직원은 9시에 나와서 6시에 끝나는 형태로 근무를 한다. 그리고 그 날은 마침 내가 6시에 끝나는 형태로 근무를 하고 있던 날이었다.

 5시 근무자가 다 나가고 나면 부서에는 한가로운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이대로 무사히 근무가 끝나게 해 달라고 속으로 빌고 있을 즈음, 5시 25분 정도에 연락이 왔다. 지금 경기도 ***인데 의무기록을 떼기 위해 이 쪽으로 올 예정이다, 그런데 좀 늦을 것 같다는 전화였다. 지하철 노선도 찍어보면 정확히 (우리의 근무가 끝나는) 6시에 도착할 것 같은데, 거기서 걸어가고 하면 (당연히) 시간이 넘어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는 전화였다. 솔직히 이런 전화를 한다는 건 무척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 분의 말에 따르면 당장 다음 날 아침에 예약되어 있는 다른 병원에 가기 위해 결과지를 떼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연락한 거라고 했다. 

 그 상황은 이해가 간다. 혹시 될지도 모르니까 전화해 본 거겠지. 그리고 나는 그것 자체는 별로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 번 정도는 물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럴 때 기대하는 답은 뻔하다. "기다려 드릴테니까 최대한 빨리 와 주세요." 뭐 이런 걸 기대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거지만, 많은 곳에서 이런 경우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 주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어딘까지나 호의일 뿐이다. 물어볼 수는 있되, 그렇게 집요하게 해 달라는 식으로 물어보면 안 되고, 어렵다는 말을 들어도 그것은 부탁한 쪽에서 납득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처럼 자기가 왜 오늘 꼭 받아야 하는지를 주절 주절 떠들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떠안을 필요도 없는 마음의 빚을 느끼게 해서도 안 된다. 조금 늦는 거, 그걸 못 기다려주냐고. 전화를 하며 시간은 가고 있고 지하철로 예상 시간 찍었을 때 6시 정각에 지하철 역 도착한다고 한들, 당연하지만 최소 20분은 늦을 거다. 지하철이 오는 시간 기다려야 하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뛰어 온다고 하더라도) 입구까지 도착하는데 10분은 걸릴 거고. 또 기적적으로 6시까지 우리 부서의 문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복사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되겠지. 그러니까 지금 전화하는 본인은 '조금' 늦는다고 하지만 그게 최소한 30분, 길어지면 4~50분은 길어질 내용의 업무라는 거지. 

 전화를 받는 날, 나는 정말 끝나자마자 뛰어가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 확인해봤을 때, 기다릴 용의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우리 회사는 초과 근무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었으니 그 날따라 너그러운 마음이 들었다면 기다려 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그건 역시 내 호의로 이뤄지는 일이다. 고객이라도 해도 기다려 줄 의무는 없는 거다. 

 한 번 부탁을 해 볼 수는 있지. 하지만 그 때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르는 건 정말 비겁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기다려달라"라는 말을 하면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같고 나쁜 사람 되는 것 같으니까 그 말은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조르며 상담원을 지치게 만들며 '그럼 빨리 오세요'라는 답을 하도록 유도하는 건 얼마나 비겁한 마음인지! 결국 "그래서 지금 제가 기다리길 원하시는 거지요?"라고 직접 물어보니 어물어물대며 통화가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뒷맛이 참 씁쓸하고 마음이 덜걱거렸다. 나쁜 일이다.

[애니] 일하는 세포를 본 후 잡상 보고듣고(감상)


일하는 세포
- 넷플릭스에서 '일하는 세포'를 3일만에 다 봤다!! (어쩌면 이틀만일지도...)
 
 일단 이 애니는 꽤나 잘 만들었다. 당연히 애니메이션의 한계 때문에 굉장히 단순화했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각 세포가 무슨 역할을 하고, 어떤 과정으로 일을 하는지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면역학은 굉장히 복잡하고 생소한 분야라 처음 배울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생각하면, 이건 거의 획기적인 컨텐츠다. 내가 이걸 간호대 시절에 봤다면 면역학 공부가 몇 배는 쉬워졌겠지... 그리고 나는 현업이 간호사다보니 눈 앞에서 애니메이션 장면이 나오면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도 기억나고 또 그 때 실제로 인체에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가 실시간으로 떠올라서 더 빠져들어 봤다. 

 처음에는 분명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적혈구며 백혈구며 면역 세포들이 의인화되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웃기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지막편 출혈성 쇼크까지 보고 나니 묘한 감정이 들더라. 현장에서 쇼크는 정말 무서운 상황이다. 내가 가장 많이 접한 쇼크는 저혈량성(비출혈성) 쇼크와 패혈성 쇼크였는데, 일단 쇼크는 어떤 경로로 발생하든 일단 발생하면 빠르게 처치를 하지 않으면 거의 100% 사망하고 제대로 응급 처치를 하더라도 많은 경우 사망으로 이어지는 정말 무서운 응급 상황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병동에서 일할 때는 정말 심심찮게 만나던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래서 그만큼 내게 익숙한 상황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 때문인가보다. 끝나고 뭔가 묘한 뭉클함을 느낀 것이.

 애니메이션이 표현한 것 이상으로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는 살기 위해 끊임없이 일한다. 사람이 죽기 직전의 직전까지,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우리 몸은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때로 우리는 좌절하고, 내 자신을 미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나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어떻게든 이 몸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와 닿아서, 어쩐지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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