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뮤직(Apple Music) 사용기 보고듣고(감상)

(* 이미지 출처 : https://9to5mac.com/2017/03/13/music-streaming-service-comparison/)

 애플뮤직을 쓴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한국 계정으로 무료 3개월, 미국 계정으로 무료 3개월을 써 보고 결국 미국 계정으로 1년 결재를 했다. 이걸 쓰면서 느낀 점을 언젠가 써 보고 싶다고는 생각했는데 귀찮아서 미루다가 어제 업데이트 된 New Music Mix 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흥이 나 써 본다.
 
 일단 애플뮤직의 장점은 모든 애플 제품이 그렇듯이 애플 제품을 많이 쓰면 쓸수록 빛을 발한다. 나는 아이폰/아이패드/에어팟/비츠 솔로 헤드폰을 쓰고 있는데 이 정도만 되어도 애플뮤직 사용이 정말 편해진다. 핸드폰으로 듣던 음악을 그대로 패드에서 들을 수 있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노트북 OS는 윈도우지만 그래도 아이튠즈를 통해 음악을 듣는 비중이 확 늘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애플뮤직은 정말로 내 음악 듣는 습관을 바꾼다. 리얼 플레이어에서 윈엠프로, 윈엠프에서 다시 알송으로 음악 재생 프로그램은 바뀌었어도 컴퓨터에 저장된(혹은 CD를 통해) 음악을 선택하여 재생하는 것에 더 익숙했는데 애플뮤직을 쓰고 나니 자연스럽게 주로 사용하는 음악 재생 프로그램이 스리슬쩍 아이튠즈로 바뀌었다. 그 전까지 아이튠즈는 애플 기기에 파일을 넣기 위한 프로그램이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출근길에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어 뉴스를 보고 웹툰을 보고 SNS를 보듯이 나는 자연스럽게 음악 앱을 켜서 'For You' 탭을 눌러 오늘은 애플 뮤직이 내게 무엇을 추천해줬는지를 본다. 사실 이건 이상하게도 초반에는 꽤 괜찮았는데 요즘에는 거의 안 맞다시피 하는데, 그래도 어떤 새로운 음악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은근 두근거리는 순간이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바로 보관함에 추가하고, 없으면 최근에 꽂힌 음악을 틀고 그 음악과 비슷한 음악을 추천받아 추가해본다. 그렇게 추가한 음악들을 들으며 하루를 보내다가 퇴근을 해서 아이튠즈를 켜면 아침에 혹은 퇴근길에 추가한 음반들이 같은 순서로 컴퓨터 보관함에 추가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음악을 이어서 들으며 작업을 할 수 있다.

 이 생활에 내가 느끼는 애플뮤직의 장점이 다 있다. 연동성, 그리고 새로운 음악과의 만남. 애플뮤직을 쓰기 전에는 일부러 새 음악을 작정하고 찾기 전에는 내가 이미 구축해 놓은 음악 DB 안에서 그 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음악을 선곡하는 생활에 젖어가고 있었다. 점점 컴퓨터를 켜서 음반을 넣고 빼는 것이 귀찮아서 일단 주로 듣는 음악을 많이 넣어두고 그 안에서 듣는 게 익숙해져가고 있었고, 동시에 그럴수록 '새로운 음악을 만나고 싶다'라는 욕구도 커져갔다. TV도 보지 않고 라디오도 별로 안 듣는 내게 새로운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채널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어서 이 지점이 늘 아쉬웟는데 애플뮤직을 쓰고 나서는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일이 확 늘었다. 일단 매일같이 새로운 음반들을 추천해주니까. 그리고 새 음악을 들어보는 부담이 확 줄었으니까. 

 이전(10여년 전까지)에는 인터넷 음반 사이트에서 표지와 소개글을 보고, CD를 구입해야 하니 그 비용과 부담(물리적/금전적)이 있어서 새 음악을 만나는 것은 여러모로 모험이었다. 딱 맞는 음악을 만나면 정말 기쁘지만 어느 정도는 실패 확률도 있었던 과정이었다. 물론 나는 그 과정을 꽤나 즐겼고,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듣지 않아던 음반도 이왕 샀으니까 여러 번 듣는 과정에서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부담이 있는 과정이었다. 최근에는 멜론/네이버뮤직/유튜브 등의 사이트를 통해 음악을 들어보고 mp3를 구입할 수 있다. 그래도 국내 사이트는 아직 내게 맞는 음악을 추천해주는 기능이 미흡해보인다. CD가 파일로 바뀌고 지불하는 비용이 달라졌을 뿐, 일단 그 음악 정보를 내가 찾아서 구입한다는 큰 틀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애플뮤직은 일단 '이거 들어볼래?'라고 추천을 해 준다. 그리고 그게 은근 나쁘지 않고, '들어보는 부담'이 크지 않다. 지금은 그냥 표지만 보고도 괜찮을 것 같으면 일단 보관함에 넣어서 쭉 들어보다가 마음에 안 들면 지운다.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애플뮤직이 꾸준히 추천해주면 그냥 들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음악들 중에는 정말 보석같이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도 있어서 애플뮤직에 고맙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 계정을 쓰면 국내 음악가들의 음악을 만나기 힘들까 싶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그냥 앨범 이름과 곡명이 영어로 나와서 그렇지 내가 듣는 가수들 음악은 어지간해서 있고, 애초에 어차피 내가 듣는 음악은 거의가 외국곡이라서 처음부터 그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DB 관리가 편하다는 것이다. 아이폰을 쓰면 내가 수동으로 넣은 곡이든 애플뮤직에서 다운받은 곡이든 다 함께 '음악' 어플에서 관리할 수 있다. 이게 정말 정말 편하다. 내가 그 동안 멜론, 바이닐 등 다른 음악 앱을 쓰다가 오래 쓰지 못하고 삭제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곡을 들을 때는 이 어플을 켜고 다른 음악을 들을 때는 저 어플을 켜는 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다만 애플뮤직에도 내가 정말 싫어하는 점이 있는데, 애플뮤직을 쓰려면 무조건 iCloud 보관함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기능 때문에 위에서 말한 자연스러운 연동이 가능한 것이지만, 나처럼 한국/미국 계정을 동시에 쓰는 경우에는 앱을 설치할 때마다 음악 보관함이 리셋되기 때문에 굉-------장히 귀찮다. 그냥 계정 전환할 때는 재생만 안 되게 해 놓고 다운 받은 음악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날아간다. 다행히 난 아이팟터치 3세대부터 애플 제품을 쓰기 시작해서 한국 계정보다 미국 계정을 주로 썼고(당시에는 한국 앱스토어와 미국 앱스토어는 그냥 비교 불가였음) 유료 어플 대부분은 미국 계정으로 산 거라 크게 문제가 없지만 한국 스토어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어플들을 사용'해야' 하는 때면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지금은 그냥 한국 스토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어플들은 안 쓰거나 아이패드(아이패드는 보관함을 사용하지 않음)로 쓰지만 시외버스 모바일같은 어플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그리고 음악 추천 기능은.......내가 잘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뭔가 애매하다. 정말 오히려 사용 초기가 더 내게 잘 맞는 음악을 많이 찾아줬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애플 뮤직에게 내가 퀸 앨범은 종종 듣지만 락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나이트위시를 듣지만 메탈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점점 추천 음반은 그냥 '오, 오늘은 얘가 이런 걸 추천해줬네?' 정도로만 보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플레이리스트는 또 어지간해서는 취향에 맞단 말이지... 어쩌면 이건 내 음악 듣는 습관이 혼란스러워일지도 모르겠다. 난 클래식을 들은 뒤에 바로 나이트위시를 듣고, 그 이후 인디 음악을 들었다가 락을 들었다가 갑자기 90년대 아이돌 음악(BSB나 핸슨 같은 거...)을 듣기도 하니까. 아무튼 플레이리스트는 정말 좋다. 특히 작업용 음악으로 좋아서 음악을 들으면서 서류 직업을 해야 한다거나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일을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단순 웹 서핑을 할 때 자주 틀게 된다.

 전반적으로는 10점 만점에 8점 정도로 만족하고, 별 일 없으면 구독을 갱신할 생각이지만 스포티파이가 한국에 온다니 이 쪽을 써 보고 싶은 마음도 들기도 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영화] 어쩌다 로맨스(Isn't It Romantic) 보고듣고(감상)


 예고편만 보고도 난 내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줄 알았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았다. 단순히 로맨스 코미디 비틀기라고 생각했는데 결론까지 깔끔하게 맺은, 멋진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로맨틱 코미디 비틀기는 유쾌하다. 정말 계속해서 시원하게 웃을 수 있다. 동시에 이 영화는 로맨스의 공식에 충실하기도 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서는 어떻게 될지 눈에 보이고, 결론도 어떻게 낼지 대충 예상이 가니까. 이 영화 자체가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서 이건 결코 흠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로맨스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여주와 남주가 있고, 끝에는 그게 비극이근 해피 앤딩이든 둘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그 사이를 둘의 에피소드로 채우면 된다. 하지만 이걸 제대로 해 내는 작품은 또 많지가 않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굽이 굽이 잘 가꿔놓은 정원을 걷는 기분이었다. 말로 잘 설명이 안 되는데 각본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썼지? 나는 로맨스 이야기를 초콜릿 아이스크림 퍼 먹는 기분으로 보는데, 초콜릿이 다 같은 초콜릿은 아니거든. 

 게다가 주인공이 정말 매력적이다. 평범해 보이던 주인공이 점점 빛이 나는데 그게 참 눈부셨다. 어느 순간 그녀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큰 위안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말로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 영화는 탁 건드리고 알아주는 기분이어서 마지막에 진심으로 후련해졌다. 

 

 나는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한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탈코르셋이 꼭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에 단발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뚱뚱한 여성이어서 예쁘지 '못하고', 예쁘지 못하니 꾸밀 수 없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늘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다니고 머리도 그냥 하나로 묶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과 별개로 나는 예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차마 입을 용기를 내지 못했던 짧은 치마와 몸에 붙는 원피스를 입기도 하고 이전에는 차마 도전해보지 못하던 베이비 핑크의 옷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가끔 그렇게 입고 대개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고, 직장을 갈 때도 화장을 하는 일이 없으며, 대개는 그냥 편한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다닌다. 이전의 티셔츠 차림과 지금의 티셔츠 차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여성은 사회적으로 꾸밈을 강요받는다'는 말도 (특히 과체중인 여성들이 말하는) '꾸미는 것도 일종의 탈코르셋이다'라는 말도 이해한다. 과체중인 여성이 꾸미는 것이 때로는 보통의 여성이 면접장에 화장을 하지 않고 운동화 차림으로 가는 것과 맞먹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거든.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 '그것이 바로 주체적 코르셋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게 해방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라는 속담도 있는 나라다. 과체중 여성은 자기 눈에 예뻐 보이는 옷을 살 권리도 없다. 꾸미고 싶을 때는 꾸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그것이 귀찮고 힘들어져 그만 두고 싶을 때는 역시 눈치보지 않고 그만 둘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유다.

 난 이 영화가 시각적으로 이 과정을 정말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평범하고 자신없고 자신이 만든 벽 안에 갇혀있던 주인공이 당당해지고 빛나는 모습이 좋았고, 감동적이었다. 현실에서 저런 주인공이 있다면 한 번의 계기로는 분명 부족할 것이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또다시 찾아오는 자기 혐오에 허덕일 때도 있겠지. 하지만 일단 다른 세상을 본 주인공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이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향한 응원이기도 했다.


다리를 다쳤다 하루하루(일상)


2019.3.7~
 : 말 그대로 다리를 다쳤다. 다치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 날은 유난히 피곤해서 이러다가 다리 풀리겠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더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는데, 다리에 정말로 힘이 풀리면서 계단에서 미끄러져버렸다. 보통 이런 식으로 넘어지면 부끄러워서라도 일단 벌떡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는 너무 아파서 발목을 잡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어야 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집까지는 편도로 한 시간하고 반이 걸리는 거리였으니까.

 일단 집에 가야 했다. 그 때는 밤 8시가 넘은 시간이라서 병원을 연 곳을 찾을 수는 없었고, 응급실에 가는 것은 애초에 선택지에 있지도 않았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이건 거기서는 응급한 축도 못 된다는 걸 아니까. 집에 가야 했는데 그 다리로는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우선 핸드폰을 열어 문을 연 약국을 찾아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으로 조심조심 걸었다. 그 와중에도 실시간으로 붓는 것이 느껴졌다. 약국에서 압박붕대와 파스를 사서 1차 응급 처치를 한 후 지하철을 탔다. 도저히 서 있기가 힘들어서 노약자석에 앉았다.

 노약자석에 앉아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아 이미 자리는 없었고 사람들은 서 있었지만 노약자석만큼은 예외였다. 맞은편에는 할아버지 하나가 아예 의자에 발을 올리고 드러누워 가고 있었고(정말 꼴 보기 싫었다), 할머니 한 분은 들어오다가 나를 보고->스캔하고->내 다리를 본 뒤 "아니, 다리를 다친 거야?"라며 바로 말을 걸었다. 나는 가는 도중 일단 스케쥴 담당 선생님꼐 전화를 걸어 다음 날 휴가 상황을 묻고, 파트장님께 연락을 하느냐 마느냐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 삔 데 좋은 처치같은 걸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심지어 내가 내리는 걸 보면서도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끝까지 내게 이야기를 하셨다. 참 신기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주저없이 말을 거는 것도 그렇고, 뻔히 내가 업무 전화를 하고 있는데도 말을 계속 이어갔다는 것도 그랬다. 기분 나쁘지는 않았고 그냥 신기할 뿐이었다. 저 연배 분들이 순식간에 서로 말 트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늘 그렇다. 그리고 이게 참 재미있는데, 난 평소에 누가 내게 그런 오지랖 부리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데도 막상 내가 약해지니까 그런 관심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 내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되면 내가 먼저 청하지 않아도 주저없이 날 도와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바로 저런 분들이라는 걸 무의식이 느꼈던 것일까.


 일단 급하게 병가를 내고 다음 날 병원에 가니 인대 3개 중 2개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반깁스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반깁스도 하고 왔다. 그리고 그대로 5일 병가를 받아 요양에 들어갔다. 

 병가 마지막 날, 아직 다리는 아프지만 그래도 바쁜 와중에 급하게 낸 병가였기 때문에 답례 쿠키라도 사 볼까 하여 아픈 다리를 이끌고 백화점에 다녀왔다. 막상 걸어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힘들었다. 집에서 돌아다닐 때는 뒤뚱거리긴 해도 걸을만 했는데 거리가 길어지니 속도도 확연히 느리고 무엇보다 반대쪽 골반과 양쪽 허리에 무리가 오는 게 느껴졌다. 뭐 어쩌겠나 싶어 천천히 걸어서 다녀왔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잠깐 지하 식품 매장을 둘러보고 싶기도 했지만 백화점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기력을 다 소진한 기분이라(다행히 쿠키 매장은 입구에서 멀지 않음) 쿠키만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 아, 정말 일찍 나왔고 최소 도보 길을 찾아 다녀왔는데도 정말 정말 힘들었다. 지도 어플에서 도보 2분 길(실제로 걸으면 그보다 짧게 걸림)을 5분이 넘게 걸었고 일단 걷는 거리가 길어지니 뭄에 무리가 확 와서 걷다 쉬다를 반복해야 했다. 

 신기한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서비스직 특성 상 매일같이 진상 고객을 만나야 하고 뉴스를 보면 그나마도 없는 인류애를 박박 긁어 내다버리고 싶은 일을 많이 만나지만 그래도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을 돕고 싶어한다는 걸 믿는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도움을 줘도 될지 자체를 몰라서 그렇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도움의 손길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도 믿는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일단 깁스를 하고 있다보니 걷는 것 자체는 힘든데 뭐라고 해야 하나...인적 환경이라고 해야 하나? 걸을 때 사람들의 반응 같은 게 확 달라진다. 젊은 여자라 내가 좀 천천히 걷거나 잠깐 멍하니 걷고 있으면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날 툭툭 치고 지나가고, 뒤에서 걷던 사람이 날 밀치고 지나가는 일도 많은데(특히 지하철/버스 등에서) 그게 싹 사라졌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많아도 날 밀치지 않는다. 공사중인 인도를 걸을 때 사람들은 대놓고는 아니어도 내게 길을 내줬고, 내 뒤에 걷던 사람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고 내가 잠깐 멈췄을 때도 그냥 기다려줬다. 요즘 버스 정류장이 참 길어서 내가 탈 버스가 와도 빨리 걷질 못해 열심히-그러나 느리게- 버스를 향해 가니 버스 기사 아저씨들은 내 근처로 와서 버스를 세워주셨다. 그리고 버스에 탔을 때 자리가 없어서 잠깐 고민하던 찰나, 근처에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앉으라고 양보를 해 줬다. 백화점 주차장으로 가는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다리를 대놓고 빤히 바라보던 아저씨는 엘레베이터 문을 끝까지 잡아줬고, 주차장으로 가는 문을 다 열어줬다. 서툰 친절이었지만 참 감사했다. 

 동시에 새삼 얼마나 몸이 힘든 사람들이 밖에서 돌아다니기 힘든지도 실감했다. 길은 휠체어는 커녕 목발만 짚어도 오가기가 힘들게 되어 있다. 횡단보도가 조금만 길어도 시간 내 맞춰 건너기가 힘들어진다.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든다. 나이가 들면 관절염은 그냥 온다고 봐도 되는데, 당장 무릎이나 허리가 조금만 아파도 갑자기 세상은 나다니기 힘든 곳이 된다. 그냥 시혜적인 시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세상은 아무리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도 다니기 쉬운 환경이 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바로 눈에 띄는 깁스를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조용한 배려와 친절을 받을 수 있었다. 배려를 보여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이 든 분도 있었고 젊은 사람도 있었고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왜 간혹 임산부는 아무리 눈에 띄여도 배려를 받기 힘들까. 그리고 눈에 띄지는 않지만 몸이 힘든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내가 허리가 아팠을 때 겉으로는 말짱해보여도 실은 걷기 힘들었던 것처럼...)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더욱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고 예의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 이곤의 귀여운 동물 그림 팁 보고듣고(감상)

이곤의 귀여운 동물 그림 팁
- 이곤 (지은이)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10-22
 : 나는 음악이든 그림이든 예술에는 관심은 많은데, 재능은 없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합창부도 지원해서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는 했어도 남들보다 진도도 느리고 잘 하지도 못했다. 그림도 마찬가지여서 그리고 끄적이는 건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잘 그리지는 못한다. 심지어 칼라링 북도 내가 칠하면 그렇게 예쁜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그림은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랑 돌아가면서 만화를 그리며 놀기도 했고, 지금도 심심하거나 손이 놀고 있으면 종이에 그림을 그리곤 한다. 회의가 길어지면 발표자료 구석부터 토끼며 고양이며 쥐들이 줄을 지어 나타나곤 해서, 내 옆자리에 앉는 선생님들은 내가 다음에 뭘 그릴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도 한다.

 그렇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이게 '동물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이 굵은 그림체가 (물론 한참 떨어지지만) 내 그림체랑 비슷하기 때문에 따라 그리는 동안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는 아이패드 프로가 있다. 이 점이 결정적으로 이 책을 사게 했다. 나는 정말 색칠하는데 자신이 없는데, 아이패드 프로로 그림을 그리면 색은 컴퓨터가 칠해 줄 거니까 나는 맞는 색을 고르기만 하면 되거든. 그리고 몇 번씩 형태 새로 잡아도 되고, 스케치 위에 그림을 그리는 건 레이어 기능을 이용하면 되니까 문제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책이 왔고, 나는 책이 오자마자 다음 날 회사 근처 제본집에서 과감하게 스프링 분철 제본을 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계속 보면서 그려야 하는데 책을 접어가며 보기는 싫고, 무엇보다 쫙 펴놓고 계속 펼쳐진 채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공책이나 문제집이 아닌 책을 자른다는 게, 그것도 새 책을 자른다는 게 참 심리적으로 저항감이 느껴지는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과감히 제본을 했다.

 짜잔! 제본집 사장님께 부탁해서 플라스틱 표지도 앞뒤로 넣었다. 제본 하고 나도 귀엽고 예쁘다! 스프링이 흰색인 것도 좋고, 쫙쫙 펼쳐지는 것도 좋다. 다만 이전에도 전공책 분철 제본해서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날 수록 책이 상하게 되고 잘못하면 저 스프링이 풀리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책을 가지고 다닐 생각이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다. 뭐, 책이 상하거나 보기 어려워지면 또 한 권 사면 되는 거지.

 제본을 하고 나니 확실히 그림 그리기면서 보기에 훨씬 좋다. 애초에 출판을 이렇게 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스프링 제본은 운반 과정에서 망가지기가 쉽고 자연스레 보관 문제나 파본 문제가 더 많이 생기니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책을 샀을 떄부터 그려보고 싶던 유니콘. 낙서하는 걸 좋아하지만 매번 그리는 것만 그리다보니 말은 늘 다리 부분이 어려워서 제대로 못 그렸는데 이걸 보고 그리면 나도 이렇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그려 본 그림들...

 제일 처음에 그려 본 호랑이 그림이다. 호랑이 그림은 온라인 서점 책 소개 페이지에도 자세히 나와 있어서 따라서 그려볼 수 있다. 나도 처음에 이 그림을 보고 '이걸 내가 그린다고?'라면서 자신이 없었는데, 중간까지 하나 하나 따라 하다보니 어라? 그럴싸하네? 싶게 나오는 걸 보고 바로 책을 샀다. 막상 그리다보니 이 그림을 그리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렸지만 그래도 그리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위애 사진으로 찍은 페이지에도 나오는 곰 그림이다. 책 소개만 보면 참 단순하고 실제로 그리는 스텝도 호랑이에 비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리는 데 이상하게 애를 먹을 그림이기도 하다. 처음에 저 곰 얼굴이랑 몸통 형태를 잡는 게 은근 어려웠다.


 이건 가장 최근에 그린 양 그림이다. 이 그림이 가장 레이어를 많이 사용해서 그린그림인데, 처음으로 배경도 넣어 봤다. 참고로 큰 양과 머리에 구름을 얹고 있는 새끼 양은 책을 보고 그린 그림이고, 앞에 동그란 뿔을 가지고 있는 작은 양은 내가 원래 그리던 그림체로 그린 양이다. 이거 그리는 데 1시간도 더 걸렸지만, 그래도 그리는 내내 즐거웠던 그림이다.

 아무래도 직장인이고, 매일 밤 늦게 오는데다가 주말에도 할 일이 쌓여 있다 보니 자주 그리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한 장 한 장 그림이 쌓여 가는 건 은근히 뿌듯하다. 덕분에 또 멋진 취미가 하나 생긴 것 같다.


[도서] 슬픈 도깨비 나사 : 그 도깨비는 왜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보고듣고(감상)

슬픈 도깨비 나사
우봉규 (글), 이육남 (그림) | 책내음(출판) | 2012-09-05

 : 최근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서로 집에 있는 책 돌려보기를 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옆에 껴서 선생님들이 가지고 오는 책을 몇 권 넘겨볼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읽는 동화는 여전히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늘 아침에도 책 교환이 한창이었다. 그 중 유독 이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몇 자 적어두려고 한다.
 
 *책의 결말까지 모두 나와 있습니다.*

 어느 산 속 깊은 동굴에 나사라는 도깨비가 있었다. '나사'라는 이름은 '는 꼭 람이 될 거야'라는 결심을 하며 스스로 붙인 이름이었다. 나사는 멀리서 사람들의 마을을 보며 매일같이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한 집에 모여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착하게 살 테니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매일같이 빌던 게 100년이 되었고, 나사는 그렇게 원하는 사람이 되어 마을에 내려올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 즐겁게 살아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나사는 마을에 집을 짓고 아이들과 함께 마당에서, 집에서 놀았다. 노는 것은 좋았는데 아이들은 마당을 망가뜨리고 집을 어지른 채 돌아갔고, 그 감당을 해야 하는 것은 나사의 몫이었다. 나사는 아이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려 했으나 아이들은 듣지 않았다. 속상한 나사는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마당에서만 놀게 했다. 집은 깨끗하게 남아 있었고, 나사는 그게 좋았다. 다음에는 마당에서도 놀지 않았다. 아이들은 매일 나사의 집에 와서 놀자고 불러냈지만 나사는 그럴수록 창에 판자를 대고 점점 세상에 담을 쌓아갔다. 뭐, 이후는 뻔하다. 어느 날 나가보니 세상은 물에 잠겼고, 그 동안 세상을 등졌던 나사는 어느 새 도깨비로 돌아가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현실과 달리 동화의 교훈은 알기 쉬운 편이다. 그 점에서 이 동화가 참 신선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정말 궁금했다. 나사처럼 친구들과 갈등이 생긴다고 해서 마음을 닫아 버려서는 나도 도깨비가 된다는 그런 생각? 그러니 친구에게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 글쎄. 나사는 일단 말을 해 보려고 했다. 아이들이 듣지 않아서 그렇지. 물론, 당연히, 아이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도 그랬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치우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뭐, 성인이 된 나도 어지르는 게 좋고 치우는 게 싫으니 자연스러운 것이겠다. 하지만 과연 책에서 그려내는 게 옳은 걸까. 책을 대충 읽으면 다른 아이들은 잘못한 게 없는데 나사의 행동이 이기적이고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나는 이 지점이 마음이 걸렸다.

 이 책을 읽고 찾아 본 많은 리뷰가 그랬다. 나사는 그저 사람이 되고 싶어했을 뿐, 더불어 살아가고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던 거라고. 맞는 말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사람들은 서로 아껴주고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서로 갈등하고, 또 양보해가며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그것을 배우는 과정, 그게 인간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한 번 시도하긴 했지만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마음을 닫아버린 나사는 그 점에서 분명 잘못을 했다. 거절당하고 상처받는 일은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아이들은 나사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라도, 마당에서 놀지 못하게 하더라도 아주 조금밖에 창이 열리지 않았을 때도 계속해서 나사에게 '놀자'고 말을 걸었다. 나사의 행동보다 아이들의 행동이 훨씬 나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나사에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사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게 된 건 '착해야 한다'는 제약 조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만약 그 조건이 없었다면 나사는 화를 내고 아이들에게 '너희가 어질러서 같이 놀기 싫어!'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도 '착해야 한다'는 제약 조건 때문에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나사는 차선으로 싫어하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고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상황 자체가 나사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나사에게 '네가 잘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아이들에게 말하곤 하는 '착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마음 밑바닥에는 아이들에게 '내 말을 잘 듣는, 다루기 쉬운 아이가 되어 줘'라는 속내를 포장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문제는 그렇게 '착해야 한다'는게 아이에게 큰 족쇄가 된다는 점이다. 문제에 맞서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고, 부당한 것에 항의하기보다는 눈 감고 자신을 죽이는 쪽으로 말이다. 나사가 보여주는 것 처럼.

 그리고 애초에 왜 사람과 어울려 살 때 도깨비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 사람의 아이들은 사람인 채로, 도깨비는 도깨비인 채로 자신을 죽이거나 바꾸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어울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사람과 사람이라고 해도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관계는 오래 갈 수가 없다. 하물며 겉모습만 사람이 된 도깨비는 더 그랬겠지. 처음부터 도깨비인 채로 어울려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  -- 나사의 진짜 실수가 있다면 나는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고, 또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점에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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