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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입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읽어주세요! * 제 블로그에서 지켜주셨으면 하는 것들 입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두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1) 통신어체 금지 / 2) 퍼가기 및 스크랩 금지 기타 공지사항은 옆에 메뉴릿을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방명록도 거기에 있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공지사항 및 방명록 가기> <이글루스 외부 링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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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지 않는 사랑 : 릴케의 가장 아름다운 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 김재혁 옮김, 고려대학교 출판부
: 오늘 같은 잠이 오지 않는 새벽, 그것도 이렇게 비가 내리는 밤,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밤이면 릴케의 시를 꺼낸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이전의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푸른 표지의 하드커버본이긴 하지만, 이사오면서 그 책 역시 어딘가의 상자에 들어간 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아쉬운대로(?) 이 책을 옆에 끼고 있다.
이런 날에는 시(詩)를 읽어야 한다. 시는 소설처럼 몇 시간이고 몰입해서 읽을 수 없고, 그렇게 읽는 것은 시를 올바로 즐기는 법이 아닐것이다. 시 하나만으로도 밤은 너무 짧다. 긴 한숨속에 단어 하나, 멍한 생각 속에 또 단어 하나를 떠올린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썼을까. 아니, 아름답다는 말은 맞는 표현이 아닐 것이다. 가끔 그의 시는 소름끼치게 어둡고, 흘러내리는 피처럼 질척하다. 하지만 그게 난 너무나 좋은 것이다.(솔직히 내가 그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Losch mir die Augen aus. ich kann dich sehn 만 해도 다시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집착이 넘치는 시란 말인가!) 가끔 훌륭한 문학작품은 언어로 쓰여졌음에도 언어를 초월한다. 릴케의 시를 읽으며 실상, 이 시는 이 언어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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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본질의 어두운 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 이 시간이면 나의 감각은 깊어지니까요 마치 오래된 편지에서 느끼는 것처럼 이때 나는 지나온 나날의 삶의 모습을 저만치 전설처럼 아득하게 바라봅니다.
- <내 본질의 어두운 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 중에서...- -----------------------------------------------------------------
(+) icarus104이외에 쓰는 내 second ID는 rene77이다. 지금까지 저 아이디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챈 사람은 딱 한 사람, 인터넷 선을 연결해 주러 오셨던 기사님 뿐이었다. 난 뮤지컬 <올슉업>에서 산드라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데, 나 역시 내 아이디를 보자마자 '릴케군요?'라고 물어본 그 순간 그 기사님 머리 뒤로 후광이 보였거든(...)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해볼까? 그대는 그보다 아름답고 상냥하여라. 거친 바람은 5월의 향긋한 꽃봉오릴 흔들고 여름철은 너무나 짧나니...' 만약 그 기사님이 'Losch mir die Augen aus. ich kann dich sehn...'을 읊기라도 했으면 난 염치불구하고 그 기사님 메일주소부터 땄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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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벌써 이 글이 산으로 갈 조짐이 보여 심히 두렵다)
나는 언제나 ##였다. 내 이름 이외의 이름으로 처음 불려 본 것은 Bath, 초등학교 영어선생님으로부터였다. 하지만 고작 일주일에 두 번, 그것도 원체 수줍어서 거의 뒤에 숨어있는 아이였기에 불려본 적 없는 저 명칭은 내 이름같지도 않았고, 내게 너무 쉽게 잊혀졌다. 그 다음으로 처음 '아이디'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중학교 때 통신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시절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아버지 아이디를 빌려서 한 통신에서 내가 처음 쓴 닉네임은 '★♬' (*)이었다. 그 당시 아이디가 뭐였더라? j....뭐였었는데.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닉네임이지 아이디가 아니었으니까. 그 뒤 쓰기 시작한 닉네임이 이카루스였고, 그게 길다고 친구 J가 '이카'라고 부른 것이 지금 닉네임의 시작이었으니 이 닉네임은 지금은 거의 제 2의 내 이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며, 실제로는 내 실명보다 더 자주 '이카'라는 말을 듣는다. 게다가 '이카'라는 닉네임 외, 내 아이디인 'icarus104'라는 아이디는 내 기본 아이디로 내가 가는 거의 모든 사이트(심지어 내 전공관련 사이트까지!)에서 쓰고 있는 아이디는 중학교 말, 혹은 고등학교 초에 만든 것이니 고등학교 때부터 썼다고 해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아이디이다.(이 아이디에는 나름 비밀이 숨어있는데, 그건 지금 하려는 이야기와 별 상관 없으니 넘어가고..) 그럼말이다. '이카'와 '나'는 얼마나 닮아있고, 또 얼마나 다른 걸까? 사실 내가 처음 온라인이라는 또 다른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카(편의상)와 나는 거의 다른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로 달랐으니까. 그 때는 낯선 사람에게는 차마 다가가지도 못하고 항상 숨었고, 주변의 몇몇 친구들에게만 마음을 연 채 점심 시간이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보다는 도서관으로 달려가 이야기 속에서 살던 아이였다. 현실에서의 난, 사람을 낯선 무서워하면서 경계하며 침묵하고 친한 친구들에게는 끝없이 수다를 떠는, 그야말로 극과 극의 사람이었다고 스스로를 기억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나는 달랐다. 글은 내게 자유를 주었다. 이카로 사는 동안 난 나이도 성별도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글만이 날 대신했다. 당시 통신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존대말을 쓰는 것이 예의였다. 그것을 통해 난 나이를 떠나 '존중하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라인의 세계는 더없이 매혹적이었다. 현실에서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가끔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어린 게 별 생각을 다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글쎄. 만약 이런 날 이해해주고, 내 생각을 들어주는 그 소수의 친구들이 없었다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종종 이카가 참 부러웠다. 나는 현실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내 쪽에서 먼저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이다, 저 '이카'가 날 변화시키더라. 난 언어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바로 내가 그 증거니까. 계속해서 '이카'로 살아가는 동안 난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말을 잘 할 수 있고, 싫다는 것을 싫다고 말하고, 좋다는 것을 좋다고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자신감이 붙은 걸까. 지금도 솔직히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내게 극도의 스트레스이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이전보다는 그 과정이 훨씬 자연스럽고, 모르는 사람과도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카는 내게 그런 자신을 주었다. 말을 잘 못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이젠 모르는 사람 앞에서도 웃을 수 있고, 말을 버벅거리긴 해도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다. 가끔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나는 얼마나 '이카'와 닮아있을까. 덧 1) 혹시 제 실제 모습과 글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많이 다른가요? 궁금해지네요. 덧 2) (*)가리는 이유는 이 아이디가 내게 너무 특별한 기억이라 그렇습니다 ^-^;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공개한 거나 다름없어요. 혹시 유니텔 클동을 아는 분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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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말을 믿는다. 그리고 사고방식이 사람을 결정한다면, '언어가 사람을 결정한다'는 말은 결코 비약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언어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라는 걸 선택할 수 없었듯, 한국어는 내가 원튼 원치 않튼 내 first-language가 되었고, 난 그 '한국어'의 영향을 짙게 받고 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집결된 건 다른 무엇보다 '언어'이며,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를 배운다기보다는 그 언어 속에 배어 있는 문화를 배운다는 것일 터이다.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는 역시 존대말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독일어에도 일본어에도 '존대'를 위한 표현은 있지만 한국어처럼 세세하게 존칭어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방금 전에 폴리클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주절주절 써 보려고 한다. 실제로 폴리클님의 글과 같은 일을 주변에서 왕왕본다. 나만해도 저런 비슷한 경우가 있기도 했고. 학교 다닐 때는 같은 학번이긴 했지만 나이가 많아서 '언니'라 부르며 존대하던 A가 나보다 늦게 입사하면서 A는 입사 연차가 높은 B에게 존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B와 나는 입사를 같은 시기에 했기 때문에 말을 트고 지낸다. A와 B, B와 나, 나와 A가 각각 만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세 명이 모이게 되면 조금 분위기가 묘해진다. B와 내가 평어를 사용하고 A가 B에게 존대말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내가 A에게 존대말을 하기가 난감해지는 건데, 이럴 경우 해결책은 1)A가 내게 말을 놓으라고 한다/ 2) B가 A에게 말을 놓으라고 한다/ 3) 모두가 말을 트기로 한다/ 4) 모두가 존대말을 사용한다, 정도가 될 수 있다. 보통 (4)로 가는 경우는 드물고, (1)이나 (2)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3)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 나오면 위아래 3년 정도는 친구지'라는 말로. 자, 바로 여기부터가 굉장히 재미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먼저 A에게, A가 먼저 B에게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서로 말 놓죠?'라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지 못할 것까지야 없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실제로 서로 눈치를 보고 조용히 하거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놓자는 제안을 꺼내도 저런 경우 '우리 서로 말 놓을까?'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A가 먼저 내게 '이카야, 그냥 말 놔'라고 하게 되고, 이어서 B도 A에게 'A야 그럼 너도 말 놔.' 식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더라. 그러니까 그거지. '존대를 받는 사람'이 '존대를 하는' 사람에게 말을 놓으라고 '제안'을 하기 전에는 존대를 하는 쪽에서 먼저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말 틀까?'라는 말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언어는 그렇게 역학관계를 형성한다. 실제로 신입 교육 때 들은 말 중, 고객이나 타 부서에 '저자세'로 나가야 하는 경우라도 절대 '미안하지만'이나 '죄송하지만'이라는 말로 운을 떼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실제로는 고객(보통 환자)의 실수나 지식부족으로 인한 상황이라고 해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저 쪽이 잘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 대신 '실례합니다만'이라고 운을 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실제로 '죄송하지만'을 사용하다가 '아까 미안하다고 했어, 안 했어'라는 사람에게 걸려서 고생하는 동료를 본 적도 있고. 온라인 세계가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어린 사람에게라도 서로 허락하기 전에는 존대말을 사용한다는 것이 아닐까. 오프라인 세계에서 만났다면 나이와 환경이 달라서 동등하게 대화할 수 없는 사람간에도 같은 조건에서 생각을 교환하는 진정한 '평등'이 어느 정도 구현된다. '언어'의 힘이 극대화되는 이 세계에서는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상이 결정되고 그 사람이 정의된다. 또한 그 언어에 따라 권력구조가 결정되기도 한다. 아무리 소심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언어에 따라 온라인 세계에서는 더없이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실제 세계에서는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할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도 언어의 세계에서는 깊이 없는 얄팍한 사람일 수도 있다. 정말이지 언어란,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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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6 - 집에 돌아왔다. 요즘에는 틈만 나면 집에 오니 '오랜만에' 집에 왔다,라는 말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언제나 집에 올 때마다 '이게 얼마나 오랜만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집에 오면 내가 하는 것은 거의 정해져 있다. 우선 내가 들어오는 것을 귀신처럼 알아채고 이미 문 앞에 와서 대기 중인 강아지의 격렬한 환영에 슬며시 미소지으며 짐을 풀어놓고(이 때쯤 강아지의 흥분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바닥에 앉아서 나에게 달려드는 강아지를 마구마구 쓰다듬어주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노트북을 꺼내고, 메일과 블로그 체크를 하고 조금 노닥이다가 강아지와 산책을 나간다. 다녀와서는 조금 지친 몸으로 음악을 틀고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꺼내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특별할 것도 없이 반복되는 '하루'지만 그것이 나에게 Routine이 되지 못함은, 그 순간 순간의 내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고, 내 앞에서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존재를 보면 결코 내가 보내는 이 순간이 어제와 같은 하루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살아있어서 너무너무 다행이다. 엷게 깔린 축축한 물안개 사이로 두 천사를 바라본다. 한 천사는 약간은 붉은 옷을 입은 채 하늘에 떠 있고, 또 다른 천사는 지금 내 옆에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털을 고르는 중이다. 정말이지, 좀 힘들긴 해도 태어나서 다행이야. 안 그래?
(+) 그나저나 오늘 산책하는 내내 오른쪽 신발끈이 풀리던데, 누가 절 그렇게 생각해주고 있었을까요? 자자, 범인은 자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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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ch mir die Augen aus. ich kann dich sehn
by 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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