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사항입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읽어주세요! *
제 블로그에서 지켜주셨으면 하는 것들 입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두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1) 통신어체 금지 / 2) 퍼가기 및 스크랩 금지
기타 공지사항은 옆에 메뉴릿을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방명록도 거기에 있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공지사항 및 방명록 가기> <이글루스 외부 링크 가기>
피쉬스토리Musical 'Evita'
- 관람일자 : 2012.1.5, 8PM
- 장소 : LG아트센터
- 출연 : 정선아(에바 페론), 박상진(후안 페론), 임병근(체) 외
- 연출 : 이지나
- 번안 : (제보바람. 과거 작품까지 털어서 까 줄 용의 있음)
0. 들어가며
- 처음 에비타를 접한 것도, 그 무대를 처음 본 것도 2006년도였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부터 난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이후 새로운 버전을 접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능하면 모두 경험해보길 원했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2006년에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 초연이 있었는데, 그 때도 무대에 대한 평은 혹평과 호평이 극명하게 갈렸다. 꼭 지금과 같이 말이다.(*주: 2006년의 공연은 '라이센스' 초연은 맞다. 그러나 처음 '에비타'가 공연된 것은 1981년도로, 이경애가 에바 페론을, 유인촌이 후안 페론을 맡았다.)
우리나라에서 에비타가 혹평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그 이유를 '진지함'에서 찾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뮤지컬'하면 떠올리는 경쾌한 음악과 화려한 쇼, 신나는 춤 같은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웃음이라고는 거의 없는 순도 100%에 가까운 진지함은 곧 '지루함'으로 비춰질 수 있어 사람들이 싫어한다 말한다. 또 혹자는 그 이유를 이야기에서 찾기도 한다. '에바 페론'이라는, 일반인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는 인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단언하건데, 뮤지컬 에비타가 우리나라에서 혹평을 받는 이유는 지루해서도 아니고, 이야기가 생소해서도 아닌, 연출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뮤지컬/연극에서 연출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고, 영화의 감독과 같다. 즉, 작품의 해석을 결정하고, 작품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정하며 그것을 위해 배우/무대/의상/조명/안무/소품 등을 조율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의상이 이상해도, 소품이 이상해도, 동선이 이상해도, 심지어는 배우가 이상해도 그 최종적인 책임은 연출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물론, 각 담당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말이다) 하물며 작품의 해석 자체가 이상하다면 그 책임을 연출에게 묻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이번 2011~2012 에비타 연출은 천박의 극이 무엇인가 보여준다. 이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가능하면 조리있게 풀어볼까. 적어도 천박한 연출보다는 덜 천박한 글을 써야 할 테니까.
1. 새로운 아르헨티나 - 에바 페론, 성녀 혹은 창녀
- '성녀인가 창녀인가?' 아마 이게 2006년도 라이센스에서 광고 문구였을텐데, 사실 이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에비타'가 가진 매력이라 생각한다. 사실 에바 페론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실제 인물인 에바도 그렇지만, 웨버와 팀 라이스가 그려낸 이 '에바 페론' 역시 그렇다. 그녀의 삶 이면에 있던, 그녀를 움직인 '동기'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욕망? 아니면 서민들을 향한 동정? 사실 둘 다 될 수 있다. 에바는 굉장히 복잡하고 복합적인 인물이다. 성녀로 추앙하는 것이 에바를 위한 광기라면, 반대로 그녀를 완전한 악녀이자 창녀로 몰아붙이는 것 역시 일종의 광기이다. 이는 공무원 시험을 보고, 대기업 면접을 보는 것, 로스쿨에 진학하는 것, MEET/DEET 시험을 보는 것. 이런 행동들 뒤에는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이 깔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직장은 가져야겠는데, 보아하니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건 통 비전이 보이지 않고, 갈 만한 곳은 정규직을 잘 뽑지 않고, 설사 기간제로 일한다 해도 앞으로의 업무가 불안정하고, 치솟는 물가에 '적당히 살 만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런 시험에 더 목을 매게 되는 거지. 하지만 동시에 하필 그 일을 선택한 이유가 단지 '돈' 뿐만은 아닐터이다. 돈도 돈이지만 의료계나 사법계에서 각자의 정의를 실현하고픈 마음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에바 페론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가사 중에서도 언급되지만, 에바는 귀족 아버지의 첩실의 딸이다. 하지만 귀족에게 버려진 첩이었던 어머니는 가난에 허덕여야 했고, 심지어 에바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귀족이었던 친척들은 장례식장에 온 에바 가족을 매정하게 쫓아내 버렸다. 이후 에바는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다. 지겹도록 가난을 경험해야 했던 에바에게는 도시로 가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작품 상에는 이 성공과정을 '남자를 갈아치우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신의 매력과 몸을 이용해 적당히 남자를 구워삶아서 상류층으로 가는 기회를 잡았다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지, 난 그 과정 중에 에바가 겪어야 했을 감정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Another suitcase, another hall 장면에서 페론의 정부에게 '우는 소리 그만하고 강해져. 네 혼자의 힘으로'라고 하는 말에서는 에바가 겪어야 했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페론과 결혼한 이후에도 에바는 귀족과 군부 양쪽에서 미움을 받게 된다. 귀족은 그녀의 미천한 신분과 시골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그녀를 배척했다. 그녀가 먼저 다가가도, 그녀가 나타나도 모르는 척 하고, 천하다 말했고, 군부는 '우리의 존경스런' 페론이 '늦바람이 나서' 각종 금기를 어겼을 뿐더러, 우선 '저 창녀'는 페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그녀를 배척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창녀, 갈보, 위험한 년'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어떤 생을 살아왔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게다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페론에게까지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을 향한 에바의 감정이 어땠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로 이것을 표현하는 장면이 Peron's lastest flame이라는 곡이다.
때문에 A New Argentina와 And The Money Kept Rolling In (And Out)은 묘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페론이 대통령이 되는 선거를 묘사한 A New Argentina는 1막의 마지막 곡으로, 에바의 정치적 능력이 어떤지 보여주는 신호탄과 같은 곡이기도 하다. 만약 연출이 제대로 되어 있기만 하다면, 이 선거를 보면서 관객은 굉장히 미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8분여의 노래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 노래는 긴박함을 자랑하며, 이 안에는 권력을 향한 에바의 욕망과 함께 당시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넘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을 직시하는 에바의 정치적 식견, 무엇보다 대중의 속성을 기가막히게 파악하고 선동하는 에바의 정치적 능력이 아낌없이 담겨있다. 사실, 노래 한 곡에 이렇게 많은 것을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팀 라이스가 왜 뮤지컬 '에비타'를 가리켜 자신이 쓴 대본 중에 가장 만족스런 대본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다. 군부가 자신을 축출하려고 하는 것을 직감하고 망명을 원하는 페론을 설득하여 감옥에 가라고 할 때 하는, '어쨌거나 그들은 겨우 20명에 불과하지 않나요. 어찌 20명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대적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에는 당시 귀족과 핵심 정치세력인 군부들만을 신경쓴 페론과 달리 에바는 '국민들의 힘'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소수의 귀족과 기득권이 한 나라를 좌우하던 시기는 저물고 진정 대중의 마음을 잡는 사람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에바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를 나긋나긋한 어조로 설득하며 '우리가...아니, 당신은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We'll--you'll be handed power on a plate)'라고 단어를 고르는 문장에서는 잠시 we'll을 you'll로 바꾸는 순간적인 멈칫거림만으로 그녀의 욕망을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단지 권력투쟁에서 밀려 감옥에 갇힌 페론을 '국민들을 위해 감옥에 간 영웅'으로 바꿔 선동하는가 하면, 감옥에서도 망명하자고 간청하는 페론을 향해서는 '당신을 바라보는 국민들을 모른 척 할 셈이냐'고 호통을 치는 에바를 당신은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귀족 세력 타파와 서민을 위한 정치를 내세웠다는 점은 분명 높이 평가받아야 할 점이나, 그 과정에서 대중을 선동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숙청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비판받을 부분 역시 존재한다. 페론이 감옥에 간 이유를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발표하는 것이나. '나는 페론 안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구원했듯, 여러분을 구원하게 해 주십시오!(But I found my salvation in Peron--may the nation. Let him save them as he saved me)'이라고 하는 걸 보면, 선동은 선동인데, 그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하게 되는 면도 있고. 상대가 뻔뻔함을 넘어 당당하게 나오면, 되려 이 쪽이 기가 질리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때가 있는데, 이 곡에 묘사된 에바를 볼 때의 내가 꼭 그렇다.
Don't cry for me Argentina에서 대중들이 페론을 그렇게 열렬히 지지하고 환호하는 것, 그리고 에바의 연설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 것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게 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대체로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법. 난 단지 그들이 에바의 선동에 놀아난 무지몽매한 군중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바의 호소가 먹혔던 것은 에바가 그들 안에 잠자고 있었던 분노를 정확히 집어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들이 바라고 있던 것을 제대로 눈 앞에 들이밀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아무리 반대편에서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했어도 MB를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의 마음과 그에 대항해 촛불을 들었던 마음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에바의 연설에 감격하는 것은 에바의 연설 때문도 있겠지만, 에바와 페론의 모습 그 자체가 처음으로 '귀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을 엎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의 자리에 선 모습을 보고 있다는, 그 상징성 때문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각 장면은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 사건이 갖는 의미를 모두 생각해 볼 때에서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을 연출은 표현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 실패하면, 2막은 통째로 무너지게 된다. 이번 공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 새로운 연출 - 파격 혹은 천박함 ....아니면 게으름인가?
- 2011, 이지나 연출의 에비타는 어땠는가. 보는 관점에 따라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천박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꼭 에비타에 관한 성녀/창녀 논쟁처럼 말이다. 난 감히 이 연출을 가리켜 '천박한 연출'이라 하고 싶다.(강조하지만, 연출가가 천박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러한 의도를 가진 연출 그 자체가 천박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연출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하나의 관점을 관객에게 강요하고 있다.
연출은 끊임없이 관객이 에비타를 비난하기를 원하는 듯하다. 에바의 행동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죄다 약화시키고 비난 받을 부분은 전면에 내세운다. 귀족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부분 자체는 노래 중에 지나가듯 언급되니 그렇다 쳐도 귀족과 군부에게 창녀, 위험한 년으로 매도되는 장면의 처리는 어땠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귀족은 전혀 '기득권'의 위엄을 가지지 못한다. 고압적으로 고고하게 앉아 내려다보던 귀족의 모습, 절도 있는 행동으로 보는 이들에게 위압감을 주던 군대의 모습은 어디 가고 관객을 향해 엉덩이를 흔드는 촐랑거리는 안무, '국물도 없어' '정말 짜증나' 등 귀족이 쓸 것 같지 않은 말투를 쓰는 가벼운 '허울만 귀족'만 남아 있다. 이전에 봤던 무대에서는 고고한 척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에바를 스쳐갔던 것 같은데, '마주쳐도 신경쓰지 맙시다'라고 말은 하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물론, 뮤지컬에서 가사 하나하나는 의미를 가지는 게 맞는데, 관객이 가사의 70% 정도만 알아들어도 꽤 많이 알아듣는 것이라는 걸, 이 연출은 설마 모르는 건가? 저런 안무와 동선으로는 전혀 에바가 거절당한다는 느낌이 안 산다. 그리고 군대의 묘사는 또 어떻고. 군부가 페론을 비난하는 건, 그가 권력을 독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에바에 홀딱 빠져서 품위를 잃고 행동하며, 페론이 이용당한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나라를 지킨 군인들, 페론 혼자 재미본다고 심술이 났네'/'너만 재밌냐?'로 표현하다니!(원문은 Could there be in our fighting corps a lack of enthusiasm for...Peron's latest flame? / Peron is a fool, breaking every taboo. And she's an actress! The evidence suggests she has other interests.) 이건 번안의 문제를 넘어선 것 같은데? 잠깐 번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처음에는 캐스팅만 보고 이 공연의 CD가 안 나온다는 걸 안타까워했다가, 공연을 보고 나서는 정말 이 공연의 CD가 안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번안가가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는데, 대본을 쭉 써놓고 그걸 읽으며 이런 번안을 해 놓고 돈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프로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일단 문장이 말이 안 되는데?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그렇다 쳐도, High Flying Adored를 영어 그대로 부르는 건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왜 aristocracy의 번역을 처음에는 '귀족'으로 했다가 이내 '재벌'로 바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순히 단어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에바의 행동에 대한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준단 말이다.(번안가는 '재벌'로 해놓고 제대로 현대화 했다고 좋아했으려나...차라리 통일이라도 하던가) '귀족 특권층을 무너뜨리겠다'와 '재벌을 무너뜨리겠다'는 어감도 다를 뿐더러 시사하는 바도 다르잖아!
이렇게 에바의 '미묘한 점'이 제대로 살지 않으면 2막은 이내 긴장감을 잃고 무너지고 만다. Rainbow high, Rainbow tour, And the Money Kept Rolling in (and out)는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며 사건이 빵빵 터져나오는 '갈등, 절정' 장면이 아니라, 지루하게 늘어지는 '동어반복'의 장면이 될 수 밖에 없다. 종종 공연 관계자가 일개 관객보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경우는 하루이틀이 아니다만, 어쩌면 이렇게 에바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위키페디아의 '에바 페론'과 '후안 페론' 페이지(특히 '평가와 비판' 부분)만 제대로 읽어봐도 이렇게 끌어가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Rainbow high를 한 번 볼까.
I came from the people
They need to adore me
So Christian Dior me
From my head to my toes
I need to be dazzling
I want to be Rainbow High!
They must have excitement
And so must I
I'm their product
It's vital you sell me
So Machiavell-me
Make an Argentine Rose!
I need to be thrilling
I shall be Rainbow High!
They need their escape
And so do I
All my descamisados expect me to outshine the enemy--
the aristocracy
I won't disappoint them!
You're not decorating a girl for a night on the town!
And I'm not a second-rate queen getting kicks with a crown!
Next stop will be Europe!
The Rainbow's gonna tour
Dressed up, somewhere to go
We'll put on a show!
(from 'Rainbow High', the broadway production)
바로 저 밑줄/하이라이트 친 부분이 에바의 평가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에바의 대사 하나하나가 이런 미묘한 점을 가지고 있다. 에바가 자신을 치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명품을 걸치고 사치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곧 나라의 대표임을 제대로 자각하고 있다는 표현이며, 얼마나 정치가다운 안목을 가졌는지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치에는 단순히 신념이나 노력만이 아닌,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다는 것을 에바는 본능적으로 알고, 이용하기 시작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빤한 일이다. 에바처럼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사람이, '서민의 대표'임을 자처하던 사람이 그렇게 대놓고 명품을 휘감고 뻐기는 건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만약 에바가 단숨에 신데렐라가 된 평범한 시골처녀였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녀가 어디 그런 사람이던가? 단순히 사치하고 뻐기면 사람들이 대번에 '믿고 뽑아놨더니 저런다'고 손가락질 할 것을 그녀가 몰랐을까? 자신 역시 가난에 시달리던 과거가 있었는데? 아무리 '서민의 대표'라고 해도 당장 각종 의전에서 귀족과 나란히 섰을 때 결코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에바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All my descamisados expect me to outshine the enemy-the aristocracy) 물론, 화려하게 꾸미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도 있었겠지. And So do I라는 부분에서 잘 드러나듯 말이다. 동시에 에바는 자신이 철저히 대중의 '산물(product)'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자신을 철저히 이용한다. 얼마든지 자신을 이용하라고 말하며, 자신을 팔라고 말한다. 때문에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는 일은 단순한 사치가 아닌, 나라를 위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다음 자연스럽게 Rainbow Tour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Rainbow Tour는 단순한 에바의 '근자감 폭발!'이 아니라, 그 동안 갈고 닦은 이미지 메이킹 실력으로 유럽에 도전하는 것이며, Rainbow high에서의 치장이 나라를 위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2막의 긴장감을 위해서는 (아무리 연출이 에바를 미워하고 꼴 보기 싫다고 생각했어도) Rainbow high까지는 관객의 시선을, 에바를 바라보는 군중의 시선과 어느 정도는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에바의 여우같은 점을 알면서도 미워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하고, Don't cry for me Argentina에서 눈물을 흘리는 대중의 마음이나 Rainbow high에서 그녀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Rainbow tour의 맛이 살아날 수 있다. 그 완벽할 것 같던 에바의 신화가 처음으로 깨지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길을 걷는 에바의 몰락을 보여주며 관객을 꿈 속에서 깨어나는 기분으로 만들어야 그 평화로운 Santa Evita를 들으며 '고요한 광기'를 느끼며 전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는가? 1막에서 철저히 에바를 욕망만 추구하는 여자로 그려놓다보니,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위선으로, Rainbow high는 명품에 홀린 된장년으로, Rainbow tour는 '역시 빈 깡통이 요란하다'로 읽히지 않던가?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And The Money Kept Rolling In (And Out)의 표현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의 연출이야말로 연출이 에비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좀 배배꼬여 있는 눈으로 보면, 굉장히 악의적으로 에바의 생애를 왜곡하고 싶어했다고까지 생각된다.
일단 이 부분을 말하려면 1976년 브로드웨이판과 2006년의 리바이벌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같은 '에비타'라는 이름을 쓰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1976년도에 나온 '에비타'와 2006년도에 리바이벌된 '에비타'는 그려내고자 하는 방향 자체가 다르다고 본다.(참고로 영화는 1976년의 브로드웨이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손가락 아프게 표현해보려고 한 에비타의 미묘한 점들을 표현하려고 한 1976년도의 브로드웨이판과 달리, 2006년도는 보다 포괄적인 '정치 행태'를 그려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에바 페론에 대한 평가는 보다 박해질 수 밖에 없다. 당시의 귀족 특권층의 행태나, 정치적 상황을 자세히 그려낸 1976년도 브로드웨이판에 비해 2006년도 런던 리바이벌판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다. 이 점을 보여주는 게 Lady got potential이 빠지고 그 자리에 대신 Art of possible이 들어갔단 점이라고 본다. 게다가 And The Money Kept Rolling In (And Out)의 마지막 문단의 차이가 이 점을 더 잘 보여준다.
And the money kept rolling out in all directions
To the poor to the weak to the destitute of all complexions
Now cynics claim a little of the cash has gone astray
But that's not the point my friends
When the money keeps rolling out you don't keep books
You can tell you've done well by the happy grateful looks
Accountants only slow things down, figures get in the way
Never been a lady loved as much as Eva Peron!
(1976 broadway & the movie ver)
If the money keeps rolling in what's a girl to do?
Cream a little off the top for expenses--wouldn't you?
But where on Earth can people hide their little piece of Heaven?
Thank God for Switzerland
Where a girl and a guy with a little petty cash between them
Can be sure when they deposit no-one's seen them
Oh what bliss to sign your checks as three-o-one-two-seven
Never been accounts in the name of Eva Peron!
(2006 London revival ver)
1976년 버전에서는 특권층에서 돈을 거워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에 치중하다보니 경제가 점차 파탄나는 과정을 그리는 데 집중해 있다면, 2006년에서는 복지를 한답시고 뒤로는 돈을 빼돌리는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내가 에비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영화를 통해서다보니 1976년도의, 생각할 여지를 두는 대본을 더 좋아한다. 물론, 연출이 2006년도를 지향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거 1976년 버전으로 올라간 거잖아. 1막에서 Lady got potential 넣고 Art of possible을 뺀 거나, 2막에서 you must love me 뺀 거 보니 분명 OBC 연출을 가져다 쓴 건데 왜 이 부분의 대본은 2006인 걸까.
나는 처음에 이 연출을 '천박하다'며 굉장히 거칠게 표현했다. 공립학교 수업시간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종교관을 강요하는 게 잘못인 것처럼, 예술을 통해 자신의 정치관을 관객에게 은근슬쩍 강요하는 것 또한 비열한 일이며, 동시에 천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미묘한 시기에 이 작품을 올리는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해야만 했다.(물론, 연출이 나름 열심히 고민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의 정책 사안을 놓고 설전이 오가고,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포퓰리즘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대립하는 이 시기에 이 작품을 올릴 때는 반드시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했어야 한다. 체는 무엇을 비판하고 있는가? 에바페론의 정책, 그 자체인가? 난 아니라고 본다. 이 극을 끌어가는 사회자인 체는 에바의 정책은 특권층에 집중되어 있던 부와 권력을 빼앗아 소외된 자들에게 분배했다는 점을 들어 공격하고 있지 않다. 그가 비판하는 점은, 자제하지 못하고 폭주한 복지 정책으로 인해 나라를 파산의 위기에 처하게 했다는 점, 바로 이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같은 서민 출신으로 귀족에게 시달리던 과거를 가진 여인인 에바가 긴 안목을 가지지 못해 나라 재정을 파탄내긴 했지만, 서민을 위한 정책을 폈다는 점만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연을 보고 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무상복지를 하다가는 나라도 파탄나고, 결국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뒤로 돈이나 몰래 챙길 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과연 이게 내가 과하게 해석하는 건가? 나중에는 '귀족'을 '재벌'로 이내 고쳐부르기 시작한 것도 일종의 의도가 있어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던데? 연출이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관객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단지 에바 페론이라는 '캐릭터' 해석이 원작의 의도와 빗나간 것 같다는 점보다 나는 '보편복지=재정파탄=포퓰리즘=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점을 강요하는 그 시선이 더 소름끼친다.
+) 귀찮아서 소소하게 기록하고 넘어가는 것
- 캐스팅 공지부터 '체 게바라'라고 명시해 놓고, 아예 중간에 에바가 '게바라~ 게바라~ 체 게바라~'라고 부르는 장면까지 있는데, 원래 대본에는 Che로만 표시되어 있으며, 작품 내내 체의 이름이 불리는 적이 없다는 것이 뭘 시사하는지 모르는 걸까
- 그리고 체와 에바를 왜 이렇게 엮어주려고 하는 건지.... 사실 에바와 체는 평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각 장면마다 실제 역사적 사건이 뭐였는지 자꾸 자막으로 띄워주는 통에 시선이 분산되더라. 별로 효과적인 것 같지 않고.
- 가끔 이런 걸 보면, 연출이 참 친절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건 단지 이 연출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연출들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과도하게 설명을 넣는 거. 마지막에 다 끝나고 에바/후안페론/체의 에필로그 자막은 좀 뻘쭘했다.
- 참, 그런데 마지막에 Lament 빼고 Another suitcase, another hall reprise를 굳이 굳이 창작해서 넣은 이유는 뭐지? 에바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는 내 앞에 놓인 길을 묵묵히 따라갔을 뿐. 그게 내 삶의 방식'이라고 노래하는 것보다 '새로운 길, 새로운 삶....어디로 가지? 나도 몰라' 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단번에 '그래도 난 내 길을 걸었어요'라고 말하던 에바에서 '이렇게 살아왔지만,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제는 더 이상 모르겠어'라고 하는 에바로 캐릭터가 바뀌더라? 게다가 그 체와 어깨동무하고 빛 속으로 사라지는 엔딩은 뭐람. 죽음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도 아니고.
- 그러고보니 처음 시작도.... 원작의, 영화 도중에 갑자기 끊겨서 짜증내던 관객들이 에바의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통곡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 티나는 수미쌍관은 감탄스럽기보다는 조금 오글거렸음.
- 2011 연출을 조금(?) 까긴 했지만, 2006년도 연출이 좋았다거나 번안이 좋았다는 말은 아니다. 번안은 2006년에도 재앙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 참, 하나 빼먹었다. 요즘 내가 계속 클래식 연주회를 다녀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오케 연주가 참 심하게 튀더라. 특히 처음 부분에 안 맞는 건 들으면서 살짝 민망할 정도였다. 관악 파트 조절이 시급할 듯.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