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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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스튜 일상



2012.05.14
- 최근에 열심히 보고 있는 심야식당2에서 크림스튜를 본 날부터 나의 크림스튜 앓이는 시작되었다. 저거 어쩐지 칼로리는 높을 것 같지만 맛있을 것 같아! 저거 역시 칼로리는 높을 것 같지만 내 취향일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어 크림스튜를 만들어봤다. 사실 이 요리는 남자친구에게 해 주려고 했던 거라서 재료는 다 갖춰놓고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오늘 나 혼자 해 먹었다는 거...

 어쨌거나 결과는 대만족. 루 만드는 걸 처참하게 실패한데다가 우유가 모자라서 과연 제대로 된 스튜가 나올까 싶었는데, 원체 재료들이 좋아서 그런지 맛이 없을래야 없을수가 없겠더라. 닭고기도 신선하고 각종 야채도 싱싱하고 무엇보다 양송이며 느타리 버섯이 담뿍 들어가 있어서 하나도 느끼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금간을 좀 줄이고 파마산 치즈로 간을 보탰더니 맛도 한층 농후해진 느낌이라, 단순히 크림스프의 업그레이드 버전 쯤으로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맛이 난달까. 자취생활을 하면서 근근히 요리를 하던 터라 요리에 화이트 와인을 써 본 것도 처음인데, 와인을 붓자마자 파바바바박 수증기+알콜이 올라오면서 주변에 향이 확 퍼지는 것도 신기하고, 어쩐지 주부 레벨이 몇 단계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라 은근히 으쓱하기도 했다. 이번에 시간에 쫓겨 루를 구하지 못해 직접 생크림, 우유, 밀가루로 맛을 냈는데, 아직 만들어보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루로 만드는 것보다 내가 만드는 게 맛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간이 은은하고 생크림/우유가 부드럽게 재료와 어울려서 루가 튄다는 느낌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중간중간 루가 좀 뭉친 감이 있다마는,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정도..

 저 스튜에 모닝빵, 그리고 요리하고 남은 화이트와인을 곁들여 먹노라니 만찬이 부럽지 않다. 오늘은 순수한(?) 스튜로 즐겼지만,나중에는 간을 좀 세게 하고 되직하게 만들어 파스타를 섞어도 어지간한 크림스파게티보다 나은 파스타가 될 것 같다.

[음반] 레이첼 야마가타, Chesapeake 한정반 '개봉기'


 내게 레이첼 야마가타는 '남자친구님께서 좋아하시는 가수'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관심은 받아 '언젠가 한 번 들어봄직한 가수'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는 가수이며, 아무렇게나 그녀의 곡을 몇 개 정도 재생해 본 정도라는 말이다. 최근의 내가 듣는 음악은 대부분 클래식(그 중에서도 고음악)이라 상대적으로 다른 음악은 거의 듣지 않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나란 인간은 참 단순한지라 '한정반'이라거나 '특별판'이라는 말에는 무지막지하게 약하다. 특히 잘 빠진 CD, DVD 패키지에는 무척이나 약하다. 마침 레이첼 3집의 한정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게 은근히 탐나게 나왔더랬다. 그래,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상으로는 말이다.


(만악의 근원.jpg)


 이 사진을 보고 '오, 하드커버 CD+사진 엽서 12장'이라고 생각한 내가 이상한 건 아니겠지. 내가 상상한 건 저 사진 '엽서' 12장이 하드커버 CD 안에 살포시 (이왕이면 비닐 속에)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받아든 택배 상자가 은근히 무게가 나가더라? 책을 한 권 함께 주문했다고 치지만, 그 책 때문이라기에는 무게가 너무 나갔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보고 나도 모르게 '이게 뭐야!!'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원근감의 장난이라고 생각되겠지.

 일반 CD와 비교하면 이 정도 크기인데, 사실 이 정도면 '그냥 조금 큰 CD' 정도겠다.(물론 CD 정리에 골치가 아파질 사이즈긴 하지만)

 그리고 CD는 이렇게 두툼두툼두툼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CD와 사진 판넬 쪼가리(?)들이 다 따로라는 거. 그걸 저 내구성 약해보이는 종이끈이 묶어주고 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한정반다운 패키지인 것도 같은데, 이왕 이렇게 만들 거 돈을 좀 더 써서 보관을 잘 할 수 있도록 종이 상자 같은데 포장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저것을 내가 과연 모서리 상하지 않게 잘 보관할 수 있을까.

 사실 상품 구성 자체는 꽤 흡족스러운 편이다. 패키지도 예쁘고, 정성이 들어간 게 '한정반' 다운 느낌이 든다. 특히 저 왼쪽에 소담하게 있는 꽃송이가 마음에 든다. CD과 겉표지의 Rachael Yamagata는 레이첼 본인의 손글씨고, Chesapeake나 사진 밑의 글들은 사진작가의 손글씨라는데, 이건 뭐 그닥(;;;)

 
 사진 판넬들은 꽤 잘 만들어졌다. 앞면은 인테리어용 작은 이젤 위에 하나씩 세워놓으면 그대로 액자가 될 것 같고, 뒷면에는 저렇게 가사와 국문 해석이 있다. 특히 해석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문제는 내가 이걸 자꾸 보면 볼수록 이 판넬들의 보관상태는 나빠지게 된다는 점이겠지.

 사실 정말 간만에 '한정반'다운 한정반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12개의 곡애 맞춰 고른 12개의 사진이라는 점도 특별해 보이고. 그런데 정말 이거 받아들고 놀란 사람이 나 하나 뿐인가. 인터넷에 도무지 이 CD에 대한 리뷰는 커녕 '이거 받아들고 놀랐어요 ㅋㅋㅋ. 엽선 줄 알았는데'라는 말 한마디조차 못 찾겠더라. 그래서 '이런 건 나라도 포스팅 해야 해!'라는 쓸데없는 블로거의 혼이 발동하여 이 밤에 영양가 없는 포스팅을 끄적이고 있다.

+) 그런데 이건 지름밸리로 보내야 하나 음악 밸리로 보내야 하나

내게 맞는 티포트 횡설수설

 오늘 차를 내리고 있으려니, 얼마 전 '어떻게 맛있는 차를 우릴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맛있는 차를 우리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차와 맛있는 물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뭐, 수돗물을 쓰고 있다지만, 그래도 확실히 수돗물을 생수로 바꾼 것만으로도 훨씬 깔끔하고 섬세한 차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의외로 중요한 것이 바로 차 우리는 도구다.

 좋은 티포트란 무엇일까? 소위 말하는 '점핑'이 일어날 수 있는 형태, 보온성, 절수력, 그리고 디자인 등등이 좋은 티포트를 결정할 수 있는 요소겠지. 하지만 가장 좋은 티포트는 뭐니뭐니해도 '손에 익은 티포트'가 아닐까. 지금 내 티포티처럼 말이다. 종종 사람의 '감'이라는 것은 계랑보다 정확해서, 열심히 차 잎의 무게를 재고, 계량컵으로 물을 재서 우린 차보다 대충 우려낸 차가 맛있는 경우가 흔하다. 하나의 티포트를 오래 쓰다보면, 그 날의 내 기분, 날씨, 온도, 차의 종류에 따른 차의 농도를 정확히 맞출 수 있게 된다. 이 티포트는 현재 내가 가진 유일한 티포트이자 가장 오래된 티포트이다. 2010년 12월 경 내 남자친구님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신 물건이니 어느 덧 1년 하고도 반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셈이다. 그 동안 순전히 '귀차니즘'의 이유로 다이소 티포트, 커피 서버, 프렌치 프레스 등으로 외도(?)를 했지만, 늘 이 티포트로 돌아오게 된 것은 역시 이 티포트가 가진 '이야기'의 힘과 '익숙함'이 주는 힘 때문이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남자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티포트가 그리 좋은 티포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손에 익었다는 장점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했었지. 그 말대로, 이 티포트로 우린 차는 그 순간의 내게 가장 좋은 차를 내어주곤 한다. 

 문득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티포트가 꼭 내 남자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 한점 없이 하얗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갈라진 유약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지우기 어려워져버린 흔적이 보이는 찻잔처럼, 내 마음 속에도 이제는 지울 수 없는 그런 흔적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마냥 서툴고 그만큼 풋풋했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흔적이 되어 그와 나 사이에 쌓여 있다. 처음 이 티포트를 받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어떨 땐은 굉장히 맛있는 차를, 어떨 때는 한 입을 먹고 하수구에 부어버려야 할 정도의 차를 내 준 것처럼 처음에 그를 향한 내 감정 또한 어떨 때는 마냥 좋았다가도 어떨 때는 한없이 우울했더랬지. 그런 시간이 쌓여 이제는 언제 손에 잡아도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티포트가 되었구나.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티포트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그를 좋아하고, 그의 존재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내 자신이 이제는 당혹스럽기보다는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에게 가장 잘 맞는 티포트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오늘이다.

쓸데없이 진지함 일상

2012.5.4
- 나란 인간은 농담을 할 때를 빼고는 기본적으로는 진지한 인간이다. 내 자신은 내가 꽤 단순하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의 평은 좀 갈리는 듯. 종종 감정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는 해도, 나는 꽤나 매뉴얼적인 인간이라,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일단 해 보기보다는 매뉴얼을 찾는다. 물건을 사면 설명서를 정독하고,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뒤적이고, 난관에 부딪치면 구글에서 해결법을 찾는다. (참고로 매뉴얼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기능이 나와 있다. 아, 애플 아이팟/아이폰의 매뉴얼은 빼고) 이런 내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경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 도서관에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빌려왔다. 이번달 18-19일은 회사의 1박2일 워크샵이 있는 날이다. 그리고 난 그 워크샵에 빠지고 싶단 말이지. 입사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빠지겠냐마는, 그건 회사 잘못도 있다구! 애초에 공지한대로 워크샵에 갔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거야 ㅠㅠ 정말 그 날 개인적으로 중요한일 이 있어서, 정말 가기 힘들단 말이다. 문제는 그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항이 아니라는 거지.(그러니까 데이트라던가 데이트라던가 데이트 같은 거. 장거리 커플에게 한 번의 데이트는 굉장히 절박하다구!)

 바로 그래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초 진지하게 집중해서 읽으며 옆에 하이얀 A4용지 하나 펴 놓고 협상 목록을 작성하고 있자니, 그걸 본 주변 동료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라. '그냥 가서 말하면 됐지, 뭐 그리 심각하게 그러냐'고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적당한 선에서 협상을 할 수 있었다구! 결국 난 18일 저녁에 빠져나오기로 공식적으로 약속을 받았다. 우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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