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릴 미(Thrill Me)- 2007. 4. 22 저녁공연(5:00 PM)
- 충무아트홀 소극장
- 캐스팅 : 최재웅(나), 이율(그)
- 피아노 : 이보미 : 오늘 쓰릴미 B페어를 드디어 보고 왔습니다. 쓰릴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최재웅씨가 출연한다는 것 때문이었기 떄문에 어떤 공연이 될지 참 궁금했어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A페어를 먼저 보게 되었고, 이제서야 B페어를 보게 되었네요.
지금 너무 두근두근해서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같은 내용, 같은 대사, 같은 음악으로 완전히 다른 극을 만들어냈더군요. 최재웅씨의 '나'는 류정한씨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입니다.
'그'가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 것이 눈에 보이는 A페어와 달리는 B페어의 눈높이는 비슷합니다. 리처드의 한마디에 쩔쩔매며 리처드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A페어에 비해 B페어는 힘의 균형이 거의 대등하다보니 이 페어의 밀고당기기는 보다 팽팽합니다. '그'는 '나'를 가지고 놀고, '역겹다!'라고 말은 하지만 '나'를 싫어하지는 않아요. 좋아하고 아껴주죠. 그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물론 그 감정이 '사랑'이라거나 '애정'인 것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는 '나'를 놓치지 않고 싶어하고,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시시각각 그 감정이 변해가는 것이 보입니다. 어휴, 이 페어의 공연은 직접 봐야 그 묘미를 알 수 있어요. 최재웅씨는 표정 하나로, 눈빛 하나로 연기합니다. 걸터앉아서 표정 하나만 달라졌는데 지금 이 사람이 경찰서에 있는지, 아니면 가석방 심의 중인지 아니면 그를 생각하고 있는지가 보여요.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이야기해 볼께요.
우선 초반, 소년시절의 '나'는 아마도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힘들어해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싫고,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싫고, 지금하고 있는 일이 나쁘다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자기 자신도, 그도 다 진저리가 나는 것처럼, 그를 보는 표정이 밝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을 완전히 바꿔놓을 존재와 만난다는 것은 결코 기분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와의 재회가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이,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 감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봅니다. 이성은 그와 함께 있어서 좋을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도 감정은 계속해서 그에게 반응하고 마는 걸요. 그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에 대한 반가움이 담뿍 느껴지는 A의 '나'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여기 '나'는 정말로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해진 길을, 예정된 길을 차근차근 밟아 걸어오던 소년이었습니다. 우수한 인재, 사랑받는 아들,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런 자신이 사회에서 손가락질받기 딱 좋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죠. 그래서 '나'의 내면은 끊임없는 갈등과 회의와 의심, 후회, 자책으로 가득합니다.
아시다시피, 쓰릴미는 가석방 심의를 받는 현재의 '내'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현재와 과거의 '나'가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최재웅씨의 '나'는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이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초반에는요. 이 괴리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하게 된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뭔가 많은 상상을 할 여지를 남겨줍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나'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전 '나'의 이야기, '나'의 세계 속에서 헤메는 느낌이 듭니다. 현재의 '나'는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과거 범죄를 후회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전혀 후회하고 있지 않아요. '나'에겐 '그'가 너무나도 절대적이어서 '그'의 말이 곧 도덕이고, 진리고 법과 같아서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히) 없었던 A페어와는 달리 B페어의 '나'는 확실히 그 자신으로서 존재하며, '그'의 영향 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아직 그에게는 사회적인 양심과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동생을 죽이는 대신 어린 애나 죽이자'라고 그가 말할 때 '좋은 생각이야'라고 하는 두 명의 '나'의 느낌은 사뭇 달랐어요. 동생을 죽이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생각에 '멋진 생각이야!'라고 말하는 A의 '나'와 달리 B의 '나'는 '그딴 생각밖에 못 하냐? 참 잘--------하는 생각이다'라는 느낌이 강하죠. '나'는 도덕적이고, 그래서 갈등하고, '그'에게 완전히 동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석방 심의에서는 시간이 지나며 '그'로 인해 마비되어 있었던 이성과 도덕적 관념을 다시 찾았다는 느낌이 드는 A페어의 '나'와는 달리 도리어 현재는 과거에는 있었던 도덕과 양심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는 현재의 '나'와의 대비는 더욱 뚜렷합니다.
최재웅씨의 표정 변화는 정말로 절묘해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다가도 정작 그가 다가오면 순간적으로 표정이 풀리고 '멍-'해지면서 몽롱한 상태로 이성이 나가는 게 보여요. 그가 불에 매혹되는 것만큼, '나'도 그 불에, 아니 그에게 매혹됩니다. 끊임없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끌리고 마는 그 복잡한 감정의 흐름이 고스란히 보여요.
B페어는 힘의 균형이 거의 대등하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라도 완전히 느낌이 달라집니다. "내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도 없지!!"라고 외치는 '나'는 정말로 그를 떠날 수도 있을 것만 같아요. '그'도 어렴풋이 그걸 느끼고 있습니다. 계약서를 쓰는 '그'의 태도도 그래서 느낌이 다릅니다. '그'는 정말로 '나'를 붙잡기 위해(달래기 위한다기보다는 정말로 붙잡기 위해서) 계약서를 제안하는 것 같아요. 네, 이 페어는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그런 느낌이 강해요. 그게 애정인 것인지는 좀더 생각해봐야겠지만요. 아무튼 '그'도 '나'도 서로를 잃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가 비록 기회를 잡으라고 말은 하지만, 동시에 '그'도 확실하게 '나'를 얻을 기회를 잡고 싶어하니까요. '내'가 그를 벗어날 기미만 보이면, '난 너 없어도 돼!'라고 말은 하지만 표정은 '나'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하거든요. 제가 이래서 이 페어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힘의 균형이 대등하니까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거든요. '나'도 그걸 알고 있어요. 자신이 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동시에 그도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느껴가는 것 같죠. '나'는 결코 '그'의 귀여운 강아지가 아녜요. '그'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도 아니죠. '그'도 그리고 저도 종종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는 '그'보다도 뛰어난 인간인 걸요. 굉장히 똑똑하고 머리 좋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되면 정말 무서워집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나'는 잃었던 이성을 찾아가고, 점점점 더 어두워집니다. 내면이 갈등이 심할 때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갈등이 정리되고 나자 차가운 이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게 됩니다. 이성을 찾은 '나'는 '그'를 보이지 않는 줄로 하나하나 손을, 발을, 목을 감아 자신에게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 계기를 준 것은 다름아닌 '그' 자신이예요. 만약 '그'가 소소한 범죄만을 저질렀다면 '나'는 끊임없이 갈등하던가, 그에게 익숙해지거나, 희박하지만 어쩌면 그에게서 벗어났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수를 들고 나오자 그의 감정이 정리될 계기가 생긴 것이 아닐까요. 마치 자기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감정이 큰 사건을 계기로 정리되는 것처럼요. 그 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서 벗어나 보려고 벗어나보려고 갈등하지만, '살인'이라는, '나'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극단적인 상황을 눈 앞에 두었는데도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노력으로는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살인은 단지 그에게 홀려서, 그에게 빠져서 그에게 '떠밀려서'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를 인정하긴 어렵지만 따르긴 쉬웠어요. 진정하려고 노력했어요. 정신차리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알 수 없는 기분. 흥분한 그의 모습. 알 수 없는 느낌. 멈추려 했지만 내 마음은 너무 멀리 왔죠. 그렇게 흥분한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결국 '나'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인을 '선택'한 것이었으니까요. '나'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요. 자신의
'선택'.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 '내'가 증거를 하나하나 모아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거예요. '그'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물론 그걸 마주할 때의 느낌은 다르겠지만..) 그래서 만일을 위해 그를 자신의 곁에 옭아맬 밧줄을 꼬듯, 증거를 일부러 파괴하지 않고 모아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A의 '내'가 정말 그를 너무 좋아해서 그와의 '기념품'을 모아왔다는 느낌이라면 B의 '나'는 좀 다릅니다. 기념품이라기보다는 그가 떠날 때를 대비하기 위한 보험처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나'는 '그'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막상 그가 배신하자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라고....? 아니, 너야!"라는 말에 "뭐!!!!!"라고 하는 목소리에 배신감이 깊게 배어있어요. 그래서인지 그에게 경찰이 협상을 제안해 왔다면서 사실 자기가 증거가 될 만한 모든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내뱉을 때, 꼭 회심의 일격을 먹이는 것 같았죠.
경찰서에서 최재웅씨의 표정 변화는 그야말로 일품. 가만히 앉아서 딱 표정 하나만 바뀌는데 과거 경찰서의 장면은 모두 사라지고 죄수복을 입고 앉아 가석방 심사를 받는 한 명의 죄수만 남아있습니다. 이미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현재의 나로 바뀌죠. 어윽. 이 장면은 정말 직접 보셔야 해요.
'그'도 정말 훌륭했습니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건 로드스타때의 모습이예요. 아이를 놓칠 때마다 온 몸에서 배어나는 그 안타까운 표정! 로드스타 초반에는 너무 선한 표정으로 무방비하게 앉아 있어서 '그'의 계획을 알고 있던 저도 순간적으로 휙-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그는 격렬하고 감정적이고 거칩니다. 미숙한 사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사람. 그래서 더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것만은 확실해요. '그'는 자신감에 차 있다기 보다는 열등감에 가득한 인물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가 '나'를 붙잡아 두고 있었던 건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쾌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를 놀리고 괴롭히고 시험하고 그랬던 것일지도요. 결국 '그'가 '나'를 배신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 아닐까요. 경찰서에서 할 말을 알려주면서도 그 말을 자기 자신도 믿지 않아요. '나'를 경찰서로 보내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잔뜩 찌푸린, 종말을 예감하는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Afraid. 감방 안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무너지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부르는 이 노래에서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추스리려고 하는 모습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떨리는 손으로 단출르 채워 보며 애써 태연한 척 해 보려고 하지만 결국 단추를 채우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는 모습에 안타까운 탄식만 나오더군요.
네. 결국 '내' 계획(?)대로 '나'와 '그'는 함께 감옥에 갑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안에서 죽어버리고 '나'만이 홀로 남죠. 7번째 가석방 심의에서 뜻하지 않게 자유를 얻게 된 '나'. '나'는 자유를 원하는 게 아니었어요. '자유'라고 말할 때 '나'는 시니컬하고 '그게 뭐지?'라는 반응이서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자유를 원하지 않았으면서 '나'는 왜 가석방 심의를 7번이나 받은 걸까요
어쩌다가 현재의 '나'는 완전히 양심도 감정도 잃어버리게 된 걸까요
이런저런 의문은 계속 남고 이 때문에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다만,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한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않던 '내'가 마지막에 '내 사랑'이라고 말할 때, 그 울림이 웃는 듯, 우는 듯 너무나 미묘해서 제 가슴을 잔잔히 두드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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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출근(5시인데 출근합니다 -_-;)해야 해서 일단은 여기까지 써 놓고 나중에 수정할께요(과연 언제가 될지는 신만이 아십니다) 어휴, 정말 언제나 글을 쓰다보면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의 반의 반의 반도 제대로 써 놓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