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In Black
- 2007. 11. 10, 4PM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 원작 : 수잔 힐, 'Woman in black'
- 각색 : 스티븐 말라트렛
- 연출 : 와이킷탕
- 캐스팅 : 최광일(배우 역), 홍성덕(아서 킵스 역)<공연을 보기 전에...>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은 지난 겨울 판타스틱스로 처음 알게 된 공연장입니다. 같은 공연장에서 개막 전부터 기대하던 작품의 막이 올랐다니 기뻤고, 또 어떻게 변했을까 기대되기도 했어요. 뭐,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막공을 앞두고 부랴부랴 달려가긴 했지만 말입니다. 무대는 낮고 객석과 가까이 있습니다. 판타스틱스 때에는 아예 '무대'라는 공간이 없어서 맨 앞줄은 거의 비워두는(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그마저도 꽉 찼지만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는 맨 앞줄부터 자연스럽게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더라고요.
공연장에 입장을 하면 작지만 뭔가 분위기 있는 무대가 보입니다. 중앙엔 낡은 의자가 하나. 의자 오른편으로 좀 떨어져 덮개로 덮인 의자가 하나 있고, 왼편으로는 덮개로 덮인 어떤 물건이 놓여 있습니다. 오른쪽 벽에는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쓰지 않는 벽난로가 하나 있고 그 위에는 술병과 거의 다 타버린 초가 놓여 있습니다. 벽난로 오른쪽으로 그림 한 점이 걸려있네요.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있는 그림입니다. 빛 바랜 그 그림이 괜시리 으스스해 보여요. 벽난로 왼편으로는 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눈을 돌려 의자 왼편을 보면 창이 하나 보입니다. 그 오른편으로는 굳게 닫혀진 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대로 계속 시선을 오른쪽으로 향하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고, 그 옆에는 한 노부인의 초상이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어두운 복도가 죽 이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고 있자면 10분이라는 시간은 꽤나 긴 시간입니다. 멍하니 그 방을 응시하고 있노라니 지금쯤 시간이 어떻게 되었을지 자꾸 시계를 보게 됩니다. 꽤나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아직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웅웅대며 소음처럼 들려오고 전 계속 시간의 흐름에 정신을 내맡깁니다. 문득 '철컥-'하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납니다. 문은 닫히고, 이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주의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제가 연극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정말 너무 멋지고 좋은 작품입니다. 이게 바로 연극이구나 싶을 정도로 좋았던 공연이었어요. 그러니 혹 보러 가실 마음이 있었던 분들은 이 글을 읽지 마시고 이 작품을 보러 가 주세요. 이 작품의 매력은 이야기나 반전도 있지만, 사실 그 반전을 알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을 정도로 또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스포일러 부분은 되도록 쓰지 않도록 할께요)<난 배우가 아니예요. 다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요> : 이야기가 시작되면 어눌해 보이는 한 노인이 조용히 걸어나와 대본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9시 30분 경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아서 킵스입니다. 그는 자신이 '그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밤의 일부터 시작하여 자신을 지금까지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악몽에 대해 연극이라는 형태를 빌려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 한 배우를 고용하고, 그와 함께 연극을 만들어나가죠. 이 배우가 과거의 젊은 킵스 역을 맡고, 지금 중-노년이 된 킵스가 그 외의 인물을 맡아 연기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완성되었고...
전 이를 여러분 앞에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한 편의 사이코 드라마 만들기로구나.'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연기를 해 보임으로써 다시 한 번 그 사건을 이야기하고 간접 체험함으로써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야기. 아서 킵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함으로써 그 이야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자신이 젊은 날에 겪었고, 아직도 계속되는, 그의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저것 있습니다만, 괜히 이 이야기를 통해 이 매력적인 작품을 도리어 평범한 이야기로 바꾸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중년의 아서와 배우이 대화를 통해, 눈에 띄지 않는 소품을 통해 그냥 '알아차리게' 끔 하는 하는 요소들이 많아서요. 어색하지 않게, 초반에 차분히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듯,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치 자연스러운 것인 양, 당시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오가던 대화가 나중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알게 되면 무서운 무게를 가지고 '쿵' 내려앉아요. 아아...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까요..
저도 특별 선물을 준비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제가 본 것 중 최고의 효과인데요!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 잘 하고 있습니다. 꼭 배우처럼요.
제벌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 전 배우가 아니라고요.
아서 킵스는 배우가 아닙니다. 그래서 첫 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소리지르거나 웅얼대거나 읊조리면서 더듬거리며 '읽어'나갑니다.
그거 아세요? 초보자를 시키니까 배우보다 낫더라고요. 아서 킵스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재연'함으로써 그 때의 일과 다시 한 번 마주치기는 겁난다. 그런 그에게 '배우'는 계속 용기를 내라고 격려해 줍니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결혼을 해서 자식이 하나 있거든요.
- 행복하시겠네요.
네.
그의 격려로 중년 아서의 연기는 점점 나아지고,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야기를 끝낼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정말로 끝일까요. 이야기는 끝나는 그 시점에서 또다시 시작되게 됩니다.
두 명의 배우가 이끌어가는 이 작품이 자칫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건 정말 공연한 걱정이었습니다. 긴장이 늦추어졌다 싶으면 다시 바짝 긴장하게 되고 중간중간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거든요. 정말이지 이 두 분의 연기는 굉장합니다.
정말로 그 때의 일을 다시 겪는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배우로써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점차 극이 진행될 수록 젊은 날의 아서 킵스가 되어가는 배우의 모습도, 어색하게 시작했지만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서의 모습도 그저 굉장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잊혀지지가 않네요. 젊은 날의 자신이 눈 앞에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던 늙은 아서의 표정, 발작적으로 '가서는 안 돼!'라고 울부짖던 목소리, 다시 한 번 '그 일'을 묵묵히 지켜볼 때의, 도리서 소름끼쳤던 담담한 눈빛도요. 제 눈 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극'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일어났던 '현실'이고 지금도 진행되는 이야기로 보였어요. 이 두 분이 아니었던들 이렇게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네요.
귀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바로 우리지 자네가 아니야.
- 하지만 저도 '알고 '싶습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뭐, 적어도 전 그래요. 이야기를 읽는 것도, 하는 것도 좋아해요.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를 통해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겪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다른 세상의 문을 열기도 하죠. 이야기를 통해 사람은 자신을 나눕니다. 이야기를 통해 살아가고, 이야기를 통해 영혼은 계승되고, 지속됩니다. 알고자 하는 인간의 호기심, 나누고자 하는 욕망.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니까요.
에이,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때로는, 알아서는 안 되는,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지요.
<She's in your Mind>
: 이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점은 최소한의 소품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여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낡은 나무 상자는 서류함이 되고, 탁자가 되고, 마차가 되기도 합니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요. 개라든지 썰물 때만 열리는 길이라든지...
- 상상을 하는 겁니다. 당신의 상상력, 그리고 관객의 상상력. 의자 두 개를 마주보고 놓으면 바로 기차 안의 풍경으로 바뀌고 몸의 흔들림, 소리만으로 기차가 출발하고 멈추는 것을 표현하죠. 몸짓을 통해 지금 길 상태가 어떤지, 유유히 달려가는지, 속도를 내어 질주하는지 등을 알 수 있어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발을 구르고 핸들을 잡는 동작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 지금 자전거를 타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참 세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요. 잠깐 자전거를 멈췄다가 다시 출발할 때 핸들을 바로 잡는 것부터가요. 그래서 분명 저택 안의 풍경인 것 처럼 보이는 무대는 단 한 번의 배경전환 없이도 런던 시가지에 있는 사무실이 되고, 기차역이 되고, 호텔이 되고, 늪지대가 되고, 교회가 되고, 묘지가 되고, 으스스한 저택이 되기도 합니다. 쓰다듬는 동작이나 시선을 통해 보이지 않아도 말이나 작은 강아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보입니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유리가면에서 종종 나오기도 하고요) 실제로 이런 것을 눈 앞에서 보니 '이게 바로 연극이구나!'라는 것이 확 느껴지더군요. 극장을 나오면서 정말 굉장한 작품을, 정말로 굉장한 연기를 보고 있을 수 있어서 전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극장을 나온 뒤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기로 하고 다시 이야기가 계속되는 그 시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렇게 작품이 많은 부분 관객을 가만 두지 않고 계속해서 상상하고 또 상상하게 하다 보니, 관객은 이 작품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 연극을 '만들어가고' 끊임없이 이미지를 만들어 가게 됩니다. 100명의 관객이 함께 이 연극을 봐도 이 연극에서 얻는 이미지는 판이하게 다를 거예요. 예를 들어 젊은 아서가 강아지를 부르고 함께 놀 때 전 자연스럽게 저희 집에서 기르는 하얀 마르티스를 상상했습니다. 그 아이가 총총거리며 걷는 모습, 앉아서 빤히 주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든지 혼자 심심해서 바닥을 긁고 뒹구는 모습이라든지요.
지금에서야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만, 처음에 어눌하고 교과서 읽듯 대본을 읽던 중년의 아서의 모습은 이 작품을 '눈으로만 바라보는' 관객의 모습과 비슷해 보입니다. 영 어색하기만 하고 '난 도저히 연기를 할 수 없다'고 하는 그가 조금씩 조금씩 연기에 익숙해지면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상상을 하고,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눈치채지도 못하게요.
사실, 이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전 굉장히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무서웠냐고 묻는다면, 'Yes', 하지만 후유증이 클 것 같냐고 묻는다면 'No'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네, '했'습니다. 작품을 볼 때는 그 신들리 연기와 간간히 튀어나오는 소리, '그 여인'의 모습에 깜짝 깜짝 놀라고 입이 바싹바싹 타서 안면도 없는 옆 사람의 손을 덥썩 잡아버리기도 했지만. 극장을 나오면서는 '휴...그렇게까지 무섭지 않아서 다행이었어.'라고 생각했는 걸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정말 괜찮은 작품, 정말 연극의 재미가 뭔지 보여주는 작품을 만났다면서 여운에 홀로 취해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이 작품의 이미지가 제 안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어둠이 더욱 짙어지고, 거리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지워지고, 침대에 들어가 눈을 감아도 이 작품의 이미지가 지워지긴 커녕 점점 더 선명해져만 가더군요. 뒤늦게서야 전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잠깐 잠이 들었는데 아서 킵스와 같은 악몽을 꾸고 말았어요. 눈을 떠 보니 새벽 2시 27분. 그 뒤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습니다. 무서워서 눈을 감을 수가 없어요.
She is in you 'Mind' She is in you 'Mind' She is in you 'Mind' She is in you 'Mind' 그냥 '본' 것은 쉽게 잊을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 제가 '봤다'고 생각한 것들은 모두 제 안에서 나온 것들, 제가 아서와 함께 '경험'한 것들이었습니다. 그저 '보기만' 했다면 시간이 갈 수록 잊혀졌겠지만, 이건 제 마음을 통해 본 것이고 그간의 경험을 다시 되살려 아서와 함께 '느낀' 것들이라 흐릿해지기는 커녕 점점 뚜렷해져만 가요. 푸른빛을 머금고 있는 늪지대라든지, 고르지 못한 자잘하고 날카로운 모래 위로 슬며시 흐르는 바닷물, 어두운 회색 저택, 그리고 '그 여인'의 모습.
이야기는 무서워요. 인간의 가장 큰 유희, 가장 큰 발명, 가장 큰 힘인 '언어'의 힘은 무서워요. 언어를 통해 그녀가 살아가고 있듯, 이제 그녀가 제게로 왔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기억을 전달하고, 기억을 통해 그녀의 존재는 계속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문득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네요.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어요. 꼭 보러 가고 싶은데,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나기 두렵습니다.
<미처 풀어내지 못한 실타래들>- 극장과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멋진 세트는 바로 그 극장 자체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렸어요. 뭔가 폐쇄된, 그다지 세련된 느낌은 없는 그런 극장, 등받이 없이 계단에 앉아서 보는 것 같은 그런 소극장은 그곳이 '극장'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작은 극장이기에 음향 효과가 120%, 200%는 더 굉장해졌어요. 음이 웅웅대며 커질 때는 몸까지 떨려와서 그게 다만 '음'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했거든요.
- .....잠에서 깨어 한동안 침대에 웅크리고 있다가 그냥 오늘은 날 새기로 하고 책상 스탠드를 켜고나서 눈에 들어온 것이 저 흰 여인 포스터였습니다.(제가 리플렛을 책상위에 펼쳐놓은 상태로 둔 거죠) 비명이 목에서 턱하니 걸리더군요. 어둡고 좁은 기숙사, 차가운 스탠드 불빛에 반사되어 그녀의 얼굴만 책상 위에서 동동 뜬 것 같이 보였거든요.
- 그러고 보니 '그 여인'이 커튼콜일 때마저 앞으로 나서지 않아서 더 후유증이 큰 것은 아닌지... 그녀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 제가 왜 이 연극을 이제서야 보게 된 걸까요?
- 덧(11/11 15:37) :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젊은 아서 킵스를 연기하던 배우가 나무 밑에 구겨져 죽어버린 아내와 아들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면서 침묵하던 장면이었습니다. 서서히 눈이 충혈되고, 눈물이 고이고, 딱 한 방울, 한 줄기 눈물이 똑 떨어지는데 저도 모르게 가슴을 꼭 부여잡았어요. 그 표정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기타>
- 현재 할로윈세일 전석 40%입니다. 놓치지 마세요
- 티켓 사이트에는 30분 전에 오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0분 전부터 입장 가능합니다. 하지만 자유석이라 선착순이니 되도록이면 빨리 가서 줄 서 있는 것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