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꽃은 아름답다.
춥다. 그렇게 느꼈다. 눈 앞에 저렇게 큰 불꽃이 그 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장소, 추억을 널름널름 집어삼키고 있는데도 나는 기이하리만치 춥다고 느꼈다. 느릿느릿, 그러나 착실하게 불꽃은 그 꽃잎을 하나하나 피워가며 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처음 이 곳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를 따라 이 곳에 왔을 때 길 옆으로 아찔할 정도로 피어 있던 그 붉은 꽃들. 그제서야 '그'가 생각이 난다. 옆을 돌아다본다. 아아, 나의 사랑하는 사람. 안타까운 사람. '그'가 보인다.
"불이...불이..."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잠깐 정정해야겠다. 불꽃은 '우리'가 아닌 '그'와 '그녀'가 살던 곳, '그'와 '그녀'의 추억을 먹고 타오르고 있다. 소리내어 그를 불러본다. 그래도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불꽃은 그를 태우고 있다.
2.
난 예전부터 책이 좋았다. 활자들을 조용히 따라가는 행위가 좋았고, 흑색으로 갈무리 되어 종이로 정갈히 정리된 세계가 좋았다. 책에 쌓인 먼지가 좋았고, 바스락 거리는 속삭임이 좋았다. 난 책, 그 중에서도 고서를 좋아했다. 세월이 지나 누렇게 변한 종이의 감촉이 좋았다.
나에겐 하나의 습관이 있었다. 산책 땐 가끔 꽃을 따서 책 사이에 끼워놓곤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가끔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누군가가 살짝 끼워놓은 꽃을 보면 선물을 받은 양 행복했다. 세월과 함께 한 꽃은 들판의 그것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꽃, 내가 선택해서 나만을 위해 날 기다린 꽃. 난 그 꽃이 좋았다.
3.
이제 불꽃은 꽃잎을 잔뜩 벌리고 만개해 있었다. 이제 곧 차갑게 져 버릴 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다시 그를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고 그의 몸은 마구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빙긋 웃음이 나온다.
팔랑팔랑. 책 사이에서 꽃잎이 떨어진다.
압화(壓花). 나만을 위한 꽃.
나는 행복해서 또다시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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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한 밤중에 레베카 라이브 CD를 듣다가 급 필받아서 30분만에 끄적여 버렸습니다. 뭐, 비슷한 듯 다른 것도 같지만, '레베카'를 읽고 나서 생각한 '나'의 이미지는 조용한 어딘가 뒤틀린 어두운 도서관의 사서와 같은 이미지였습니다. 만덜레이를 잃고 맥심은 망가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레베카(그리고 그녀의 분신이었던 덴버스)는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 버렸으니까요. 만덜레이는 그 자신이자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을터, 그것을 잃은 맥심은 화석처럼 텅 비어버렸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을 오히려 편하고 행복해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찾지 않는 유물을 정리하는 관리인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의 사서처럼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그'가 있어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고요.(그게 진짜 행복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어제 1시간 반 밖에 안 자고 22시간을 밖에서 돌아다녔더니 제 정신이 아니네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