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derella 1965- 음악 : Rodgers and Hammerstein
- 출연 : Lesley Ann Warren, Stuart Damon, Ginger Rogers, Walter Pidgeon, and Celeste Holm : 로저스 & 헤머슈타인의 tv 뮤지컬 '신데렐라'를 보았습니다. 처음 느낀 것은 당황스러움이었어요. 서곡이 연주되는 내내 'Overture'라는 화면을 바라보며, 그제서야 황급히 이 DVD가 나온 연도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65'년도에 방송된 TV 뮤지컬이었다는 것을 보고는 '과연...'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좋게 말하면 '고풍스러움'이, 나쁘게 말하면 '촌스러움'이 느껴지는 화면입니다. 게다가 음질과 화질이 너무 나빠요. 극에 집중하기까지 음질과 화질의 열악함이 너무 신경쓰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요즘 화려한 영상과 깨끗한 음향에 익숙해져있어서 그런지, 이 영상물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음... 꼭 영화관에서 캠으로 몰래 찍어온 불법 영상물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왜 원래 화면이 작은 동영상을 전체화면으로 볼 때 모자이크처럼 보이는 현상 있잖아요? 이 DVD가 그런 영상을 보여주거든요. 그리고 효과가 지금 보기에는 참으로 유치하고 안쓰러워 보입니다. 환상적인 마법의 순간이어야 하는 신데렐라의 변신(?) 장면이나 무도회 장면이 지금 보기에는 굉장히 초라하거든요. 의상, 무대장치도 '지금보기에는' 빈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요. 그런데 이런 무대에 실망하는 순간, 뮤지컬의 마법이 시작됩니다.
뮤지컬의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이야기 거의 그대로입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도입부와 후반부가 약간 달라졌다는 거예요. 자신의 신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 왕자는 여러 모험을 겪고 여러 공주를 만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요. 여행에 지친 왕자는 한 농가를 지나가다가 자신을 훔쳐보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물을 좀 줄 수 있겠냐고 묻죠. 얼굴 여기저기에 검댕이 묻어있는 소녀는 '계모가 자신이 없을 땐 다른 사람과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주저하지만, 결국 그에게 물을 주고, 그렇게 그들은 헤어집니다. 왕과 왕비는 왕자가 돌아온 것은 기쁘지만, 신부감을 데려오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하고 왕자를 위해 전국의 예쁜 아가씨들을 초대해 성대한 무도회를 엽니다. 물론 신데렐라는 계모 몰래 요정의 도움으로 무도회에 참석하고 유리구두만 남긴 채 12시에 도망나오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무대와 의상은 '지금 보기에는' 빈약하고 볼품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마음을 열고 하나하나 보면, 얼마나 의상과 무대에 공을 들였는지가 보여요. 장식은 화려하고 꼼꼼합니다. 동화책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해요. 섬세한 장식이 되어 있는 왕궁, 그리고 아기자기한 마을과 배경, 그리고 동화책 삽화를 그대로 현실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의상 등등 꼼꼼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여기저기 보이죠. 그리고 음악! 로저스와 헤머슈타인의 작품은 음악이 참 좋아요. 듣기 편하고 아름답고 어딘가 그리운, 감상적인 선율의 음악들이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은 따스해요. 귀에 쏙쏙 들어오기 때문에 한 번 들으면 곧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이기도 하고요. reprise 때는 함께 따라부르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자칫 너무나 뻔하고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음악과 가사의 힘이 큽니다.
'내가 당신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떄문에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요?
당신이 멋지기 때문에 사랑하는 걸까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멋져보이는 걸까요
당신은 정말로 내가 보는 만큼 아름다운가요?' 저 가사는 부드럽게 제 가슴의 문을 두드립니다. 물론 왕자는 멋지고 신데렐라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까요?'라는 말이 왜 그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어요. 신데렐라와 왕자는 서로의 신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만납니다. 신데렐라는 계모가 무섭지만, 그래도 목말라하는 여행자를 위해서 물을 건네고, 왕자는 재투성이의 보잘것 없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그 마음씨에 감도하죠. 무도회에서 만난 왕자가 '당신의 그 목소리.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어본 것만 같네요. 이게 가능한 걸까요?(Is that possible?)'라고 묻자 신데렐라는 '네. 가능합니다. 특히 오늘 같은 밤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죠.'라고 수줍게 대답합니다. 그 순간 12시의 종소리가 울리고 신데렐라는 황급히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왕자가 신데렐라를 찾아내는 계기 역시 동화와 조금 다릅니다. 신데렐라가 남긴 유리구두 한 짝을 들고 전국을 누비던 왕자는 신데렐라가 사는 오두막을 지나가게 됩니다. 물론 두 언니의 발에는 구두가 맞지 않았어요. 그대로 떠나려는 왕자에게 신데렐라는 물을 건네줍니다. 그들이 처음만났던 그 날처럼요. 그리고 그 물을 마시면서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왕자는 자신이 그렇게 찾던 사람이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유리구두는 그의 깨달음을 그저 재확인 해 주는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는 해피엔딩! 왕자와 신데렐라는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작은 차이인데, 외모만이 그들의 사랑의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와 닿았는지 모르겠어요. 서로의 아름다운 마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들이라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이니까요. 시간이 가고, 모습은 변해도, 사랑이 있다면 상대방은 더더욱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왕과 왕비처럼요. 어릴 적에 신데렐라 이야기를 볼 때는 신데렐라와 왕자의 이야기만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 뮤지컬을 볼 때 조연인 왕과 왕비의 모습에 눈이 더 가게 되더라고요. 아마 제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나이가 든 왕과 왕비는 서로의 둘도없는 친구입니다. 등장하는 순간은 짧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친근한 몸짓에 그들이 서로 얼마나 서로를 아끼는지 보여서 보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저 나이대의 왕자라면 분명 신부를 고르는 안목이 있을 것이오.'
"당신이 왕자의 나이 때, 저를 골랐던 것처럼 말이죠?"
"당신에게 춤을 신청해도 될까?"
"당신이 언제쯤 그 말을 할지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였어요."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장난스러운 눈빛을 교환하는 부부의 모습이란 아름다운 거죠. 새로 시작하는 연인의 모습은 사랑스럽고 가슴벅차지만, 오랫동안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온 부부의 모습은 온화함과 경탄을 느끼게 해 주니까요.
그리고 이게 은근히 소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노래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당신을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걸까요, 아니면...'이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모두가 무도회에서 돌아온 다음에 함께 무도회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한 신데렐라가 '이건 단지 제 상상일 뿐인데요...'라면서 무도회에서 있었던 일을 노래하고, 모두들 '어떻제 저 애가 그런 사실을 알지? 꼭 거기 있었던 것 같잖아!?'라고 놀라는 장면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의심하다가, 그래도 다들 여자인지라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 로맨틱함에 모두 얼굴을 붉히고 한숨쉬는 것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아무리 못생기고, 늙어도 여자는 여자인 거죠. 왕자가 구두의 주인을 찾으러 올 때, 당당하게 발을 내밀던 계모의 모습도 기가 막힌다기보다는 '그럼, 저런 게 여자 마음이라고!'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전체적으로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이 부럽네요. 벌써 65년에 이런 TV 뮤지컬을 방송하고, 크리스마스 캐롤(뮤지컬)이 연말에 방영되며, 하이 스큘 뮤지컬 같은 작품이 자연스럽게 방송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