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ie(1982)
- 감독 : 존 휴스턴
- 출연 : 아일린 퀸 / 알버트 피니 / 캐롤 버넷 / 앤 레인킹
- 각본 : 캐롤 소비에스키
- 제작 : 레이 스타크
- 음악 : 랄프 번즈 / 찰리 스트로스
: 뮤지컬 영화 '애니'를 사 놓고 DVD장에 꽂아놓고 있다가 급히 꺼내게 된 것은, 앞서 본 '신데렐라' DVD에 삽입된 예고편 때문이었습니다. 뮤지컬 '애니'의 영화판이지만, 뮤지컬과는 사뭇 다릅니다. 뮤지컬에 등장하지 않는 노래들이 많이 삽입되었고, 동시에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들이 많이 빠졌습니다. 인물들의 성격도 조금씩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손을 들어주자면, 전 영화판의 인물들이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랄까, 더 '설득력' 있거든요. 뮤지컬은 제 소녀시절의 로망을 채워주지만, 영화판은 지금 봐도 '과연...'이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애니는 고아원의 맏언니입니다. 애니보다 덩치가 크고 나이든 아이들도 있지만, 애니의 주먹 앞에서는 꼼짝을 하지 못하죠. 거리의 소년들도 애니의 주먹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집니다. 애니는 그저 순진하고 바른 소녀는 아니예요. 고아원이라는 환경은 그만큼 애니를 단련시키죠. 세탁소 아저씨의 도움으로 애니는 고아원에서 탈출 합니다. 그러다가 거리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개를 발견하게 되고, 그 개를 도와주게 됩니다. 개는 그 뒤로 애니를 졸졸 따라오게 되죠. 애니는 처음엔 이 개를 버리려고 합니다.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데 개까지 데리고 다니기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아무리 어려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동물 수용소에서 그 개를 잡아다가 죽이려는 것을 보고, 그 개의 이름을 '샌디'라고 붙이면서 데리고 다니기로 합니다. 뮤지컬에서 한눈에 개를 보고 데리고 다니기로 마음먹은 것과는 사뭇 다르죠.
워벅스 씨나 비서 그레이스의 성격 역시 많이 달라졌습니다. 뮤지컬을 보면서 '왜 하필 워벅스 씨는 고아를 일주일 동안 데리고 있으려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에서는 그 이유가 나옵니다. 워벅스씨는 뮤지컬보다 훨씬 더 괴팍하고, 훨씬 덜 자상합니다. 워벅스씨는 가난에 대한 한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예술에 대한 안목은 없지만, 그림을 모으고, 쉴새없이 일을 하는 사업가죠.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아와 함께 웃는 모습을 '촬영'해서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서 고아를 한 명 데려오는 게 어떻냐는 말이 나왔고, 그를 위해서 그레이스가 고아원에 가게 된 거죠. 그레이스는 애니를 벌주려는 헤니건을 보고 반발심에 애니를 데리고 오게 되고요. 애니를 보고 역정을 내는 워벅스씨를 겨우겨우 달래는 것도 그레이스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워벅스씨는 곧 애니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아요. 애니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는 있지만, 입양 문제에 대해서는 한동안 망설입니다. 입양 문제는 사실 그레이스의 생각이었어요. 애니와 떨어지기 힘들어 하는 것은 워벅스씨가 아니고 그레이스였고, 워벅스씨는 그런 그레이스를 위해서 애니를 입양하기로 합니다. 그러다가 점차 서로를 딸로, 아버지로 사랑하게 되죠.
가장 많이 성격이 변한 캐릭터라면 아무래도 미스 헤니건(고아원장)이겠지요. 뮤지컬에서 미스 헤니건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녀는 사랑에 목말라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아이들을 윽박질러가면서 '사랑해요, 미스 헤니건'을 읊게 하는 것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미소를 띄고 술을 들이키는 것이 가슴 시렸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걸까 싶어서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로맨스를 들으면서 '왜 난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라며 한숨짓는 그녀는, 사실 마음 속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충분히 사랑받았다면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녀는 마음의 공허함을 보석으로 채우고 있었을 뿐입니다. 물론, 이 점이 그녀가 한 일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겠지만요. 아이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도, 자신을 계속해서 끈질기게 괴롭히고 놀려대도 그녀는 어쨌거나 자신의 아이들을 보호합니다. 아이들에 관한 모든 것은 꼼꼼하게 보관해 놓기도 하고요. 애니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지만, 그녀는 애니를 어떻게 해 보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동생이 애니를 죽이려고 하자, 온 몸을 던져 그 앞을 막아서는 그녀의 모습에는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합니다.("그만 둬! 그 애는 단지 꼬마일 뿐이라고!")
이렇게 영화는 뮤지컬보다 더 많은 것을 자세히 보여줄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뮤지컬에서 생략하고 넘어가거나 대략적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것들을 보다 자세히 보여줄 수 있고, 더 많은 에피소드들로 인물의 캐릭터를 잘 보여줄 수 있어요.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정말 잘 만든 영화입니다. 각자의 캐릭터가 훨씬 분명해졌거든요. 영화에서 보여주는 고아원의 생활을 비참하고, 힘겹습니다. 'It's The Hard-Knock Life'는 영화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준 장면입니다.(그리고 이 장면이 예고편에 있었고, 전 이 장면을 보고 당장 영화 DVD를 꺼내게 되었죠) 앞서 말했듯, 작은 일상을 통해서 헤니건의 캐릭터도 보다 분명해졌고, 워벅스 씨의 캐릭터나 그레이스의 캐릭터도 분명해졌어요. 그리고 은근히 진행되는 워벅스와 그레이스의 사랑 이야기도 재미있고요.
또 보다 영화는 '현실적'이 되었습니다. 헤니건의 동생 루스터와 그 애인이 어떻게 애니의 부모 역할을 완벽하게 할 수 있었는지, 팬던트의 반쪽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헤니건은 이미 애니의 부모님이 화재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 유품을 돌려받게 되었고, 그것을 계속 보관하고 있었거든요. 또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던 백악관 장면 역시 수정되었습니다. 애니의 노래를 듣고 '뉴딜정책'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뉴딜정책에 대한 내용은 영화 초반부터 언급됩니다. 다만, 루즈벨트 대통령이 워벅스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애니를 이용하는 것 뿐이예요. 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다보니 '동화적'인 면은 상당히 감소해서 조금 로망(..)이 줄었다는 것이랄까요.
뮤지컬이 느린 호흡으로 차분차분 진행된다면, 영화는 이야기가 숨가쁘게 흘러간다는 느낌입니다. Tomorrow를 모두 함께 부르는 현장감, 현장의 감동은 뮤지컬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지루할 틈 없이 흐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전 이 예쁜 작품을 사랑하게 된 자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