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dits 밴디트, 또 다른 시작- 일시 : 2008. 1. 24 8PM
- 원더 스페이스
(구 사다리 아트센터 네모극장)
- 연출 : 이지나
- 캐스팅 : 이정화, 리사, 한지상, 벨라마피아(현쥬니, 김수진, 이원영, 송은화) :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기쁨을 하나하나 모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상처가 하나하나 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통곡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나오지 않는 목을 쥐어짜며 소리지르고 싶기도 합니다. 알 수 없는 불꽃이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올라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싶기도 하죠. 세상도, 자기 자신도.
즐거워서 깔깔 웃다가도 문득 목을 죄여오는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답답함. 막막함. 이런 것들이 문득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던 중 이 공연을 보았습니다. 평소라면 전혀 찾지 않았을 공연이었습니다. 대학로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면서 이 공연 포스터를 봐도 그닥 끌리지 않는 공연이었어요. 그런데 왜 이 공연이 문득 떠오른건지 모르겠습니다. 전 영화도 보지 않았었는데 말이죠.
이 공연을 예매한 것은 충동이었습니다. 그냥 한 순간에 자신을 내맡기고 싶은 그런 충동. 자신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차가운 겨울,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에스프레소 한 잔들 한번에 들이키고는 공연장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전 밴디트(Bandits)를 만났습니다.
강렬한 드럼 소리, 번쩍이는 조명 아래 그녀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전 제 자신을 잊고 그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가요는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 전 락이 뭔지도 모릅니다. 가사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었을까요.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라 자신을 꺼내달라고 아우성칩니다. 드럼 소리와 함께 심장이 뛰고, 몸이 떨립니다. 나 여기 살아있노라고 외치는 제 자신이 있습니다. 이 공연은 그런 공연이었습니다.
교도소에 밴드가 하나 있습니다. '죄수들의 인권이 존중되는 교도소'라는 이미지를 위해서 경찰의 날 공연을 위해 호송되던 이들은 우연한 계기로 탈옥을 하게 되고, 이들의 방황이 시작됩니다. 사실, 스토리는 별 것 없죠. 그냥 여섯 죄수의 이야기입니다. 머리로는 알겠어요. 이 스토리가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 이 공연이 어디가 나쁜지를 말하자면 말하지 못할 것도 없어요. 하지만 공연을 생각하면 머리가 먼저 뜨거워지고, 가슴이 먼저 요동칩니다. 피가 끓어오르고 제 안에서 또 다른 제가 태어납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냐
내가 원해서 살아온 게 아냐
누가 나를 세상에 던져놨어
누가 나를 여기에 내던졌어
내가 잃어버린 날개는 어디에
내가 덮고 잠들 날개는 어디에
이제 내 영혼이 숨을 곳은 어디
이제 내 영혼이 묻힐 곳은 어디
대답 없는 운명의 신이여
그대를 저주하리 음악은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여섯명의 사연과 캐릭터는 크게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음악, 이야기, 음악, 이야기, 음악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그러면 어때요? 음악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줍니다. 은행 시스템을 해킹하다 잡혀온 키보드, 마음에 들지 않던 클럽 사장의 눈을 실명케 해서 들어온 드러머, 마약 밀매로 잡혀들어온 세컨 기타, 음악을 하지 못한 아버지를 원망해서 집에 불을 질러 잡혀온 베이스, 자신을 강간한 사람을 10년만에 찾아가서 복수해 잡혀 들어온 기타, 그리고 이제는 잊혀진 80년대 인기가수. 그들의 이야기는 잠깐잠깐 나오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들이 현재 살아있고, 그들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거겠죠. 그들 자신도 계획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한 탈옥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탈옥은 마침 있던 대선에 묻혀버립니다. 그들도 별로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들은 세상에 내던져 있었고, 심장이 뛰는 한, 살아있었을 뿐입니다.
공연에 대해 아직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머리가, 가슴이 식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연장 안에서 제 자신을 벗어던지고 나자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들이 지독하게 질투났습니다. 저 아래서 노래하는 그들이, 그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그들이, 그렇게 생생하게 '살이있는' 그들이 미친듯이 부러웠습니다. 저도 그렇게 노래하고 그렇게 소리지르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들 속에 있고 싶었습니다.
난 너의 인형이 아냐
내 눈을 봐, 내 맘을 봐
난 숨을 쉬어
난 너의 인형이 아냐
울기도 해. 너 때문에
난 너의 인형이 아냐
내 눈을 봐, 내 맘을 봐
내게 강요하지 마
나를 묶지 마 그들은 다만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들이 다시 시작하려는 순간, 다시 운명은 그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조여오는 포위망. 세상의 바람 속에서 지쳐가는 그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 전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연장에서 그렇게 목 놓아 울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그리고 죽음. 그러나 그 순간 빛나는 그들의 빛이 너무 서글퍼서, 제 뛰는 심장을 멈출 수 없어서 목 놓아 울었습니다. 공연 끝까지 거친 숨을 진정시킬 수 없어서 꺽꺽댔습니다. 얼굴이 온통 눈물로 엉망이 되고 소매가 더러워졌지만,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공연은 끝나고 차가운 겨울바람속에서 한없이 공연장을 돌아보고 또 돌아봤습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한 걸음 걷고 다시 뒤를 돌아보고 두 걸음 걷고 다시 멈춰서서 멍하니 공연장을 돌아봤습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데, 가슴 속의 불은 더욱 활활 타올라 제 자신을 태워버릴 것 같았습니다.
잘 할 수 있어. 내가 누군데
난 한경혜야!
날 봐. 내가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있어!
날 봐. 너의 곁에 있어. 너의 곁에 있어.
너의 곁에 있어. 왜 이 공연이 좋냐고요? 글쎄요. 제 심장이 뛰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 제가 살아있기 때문이겠죠. 소리지르고, 울고, 악을 쓰고, 짜증내고... 그리고 피가 흐르고, 외로운 인간이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