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kyll & Hyde
- 일시 : 2008.12.3 8PM
- 장소 : LG 아트센터
- 캐스팅 : 홍광호(지킬), 김선영(루시), 김소현(엠마), 김봉환(덴버스경), 류창우(어터슨), 이영기(주교), 강상범(새비지/풀), 박인배(스파이더/스트라이더), 양정열(글로솝 장군), 김호(프룹스), 유채정(비스콘필드/기네비어), 남자 앙상블(이승원-신문팔이-,황세준,문상현,조강현,최세용,최현덕), 여자 앙상블(이호정,최고운,최혜림,선영,김여진,고효진)
- 연출 : David Swan
- 음악감독 : 원미솔 : 언제나 공연을 보고 나면 느끼지만, 무대 작품은 역시 무대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처음으로 무대 앞에서 만난 지킬앤하이드.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지킬은, 하이드는 어떤 존재였을까? 쓰러지는 지킬 안에서, 그리고 하이드 안에서 정리되지 않는 감상을 안고 돌아온다.
처음이니까 조금 구구절절하게, 그리고 조금은 횡설수설하게 지킬과 하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내가 처음 이 작품을 알게 된건 2006년의 어느 날이었다. 1994년 Anthony Warlow씨의 컨셉 앨범을 통해서였고, 난 단번에 이 작품에 반하게 되었다. 화려한 음악과 작품 전체를 가로지르는 비릿하고 음습한 분위기에 매료되고, 그건 거의 순전히 앤소니 왈로우씨가 보여주는 슬프리만치 아름다운 지킬과 하이드 덕이었다. 이 음반은 내게 너무 절대적이어서 그 이후 어떤 지킬도 이 분을 넘어서지 못했을 뿐더러 다른 어떤 지킬을 들어도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씩 다른 지킬을 들을 수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들려주는 지킬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 수가 있었다. 그리고 2008년의 끝자락에서 나는 드디어 지킬의 이야기에 '함께 할 수' 있었다.
> 너는 나, 나는 너
: 프롤로그에서 싸늘히 식은 시체의 손을 안타깝게 쓸어내리는 지킬의 모습에서 난 젊은 의사의 모습을 보았다. 나 역시 의료계에 있기 때문일까. 그의 모습이 슬프고 안타깝게 보였다. 이 지킬은 무척이나 젊었다. 그래서 무모하고, 젊은 사람 특유의 결벽증이 보였다. 환자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정말로 자신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그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Lost in the Darkness는 어찌나 애처롭고 아름다웠는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당신을 구해내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더라. 지킬은 순진했다. 왜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병원에서 2년여를 근무하면서 수없는 죽음을 봤다. 온기가 남아있지만 가슴을 싸늘하게 만드는 죽음을 봐 왔고,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생명을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기만 한 적도 있다. 차라리 내가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환자를 본 적도 있다. 그러면서 배운 것은 생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발버둥을 쳐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 인간이 인간을 고친다는 건 끔찍한 오만에 불과하다. 학생때는, 난 의료기술이 인간을 조금이라도 고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다. 의술은 절대 인간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안다. 우리가 하는 것은 그저 돕는 것뿐이다. 삶과 죽음은 우리 손 밖이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며 기도하는 것 뿐이다.
이제 막 현장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후배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그들의 무모함을, 난 이 지킬을 통해 다시 느꼈다. 왜 현장 선배들이 빠르게 타성에 젖어들어가는지 진심으로 의아해하고, 왜 그렇게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지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눈빛과 의문 앞에서 애매하게 웃을 수 밖에 없는 나는, 이 지킬 앞에서도 안타깝게 웃었다. 이 지킬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기에 모든 사람이 선을 추구할 것이라 믿고, 모든 사람이 도덕적인 상태를 바란다고 믿고, 모든 사람이 이성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것을 믿고, '자신 외의 모든 사람이 그릇되었다'고 믿었다. 그의 눈에는 세상의 결점밖에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 특유의 오만함이 그에게서 짙게 묻어나온다. 자기는 이미 다 큰 어른이고,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그럼 오만 말이다. 그런 그에게 이사회의 사람들이 그의 눈에는 그저 위선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았겠지.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그 작은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열정에 차 있다. 그게 그의 비극이었다. '난 그들과는 달라'라는 생각, 솔직히 대놓고 말해서 '난 그들보다 훨씬 우월해!'라는 그의 마음 속에서 이미 하이드는 조금씩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고치를 뚫고 나오려는 나비의 사투가 너무 안타까워서아주 조금, 고치를 찢어 나비가 쉽게 나오게 해 줬더니 결국 그 나비는 날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하이드는 그렇게 태어난 기형적인 나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난 이 하이드를 보며 슬펐고, 안타까웠고, 또한 알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어터슨을 따라가게 된 뒷골목 사창가에서 결국 자신도 똑같은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나서야 지킬은 자신이 실험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험의 대상은, 결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더러운 면을 가지고 있는 인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지킬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닌지. 자신도 완벽해 질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 안의 어둠과 싸우고, 결국 그 어둠 또한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인간은 성숙한다. 어떻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지킬의 저 말에 왜 그렇게 헛웃음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하나하나 지루하지만 꼼꼼하게 풀어야 할 복잡한 매듭을 단번에 칼로 잘라버리는 건, 젊으니까 할 수 있는 무모함이리라. 그럼으로써 자신이 뭘 잃게 될지도 모르는채....
이 무대를 보기 전까지 지킬과 하이드는 일종이 선과 악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보는 창녀에게조차 친구가 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지킬과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하이드는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살을 맞댄 루시조차 그들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끝내 알지 못하고 죽지 않던가.
그런데 무대를 보면서 나는 이 하이드가 다름아닌 지킬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를 기생충이라고 생각하던 지킬도 끝내는 알았겠지. 하이드는 바로 그 자신이라는 걸. 이 하이드는 짐승같았다. 지킬이 고상하고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이 하이드는 진창 속에서 그르렁거리는 짐승이었다. 그의 숨소리조차 위협적이어서 난방이 잘 되는 공연장 안에 있으면서도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이 하이드는, 지킬의 어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지킬보다 더욱 지킬같은 존재였다. 이제 막 태어난, 규약을 모르는 아기같은 존재 말이지.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흉악범들을 보면서 누구나 그 사람들이 끔찍한 재앙을 당하길 바라곤 하지 않던가? 세상이 결점을 자신의 손으로 뜯어고치고 싶어하던 지킬의 본심, '체면과 사회적 제약'을 벗어던져버린 지킬이 바로 하이드였다. 그래서 지킬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하이드가 되고 싶어했던 것이고. 아아, 자유, 그 달콤한 감각! 하이드가 진정 악이라면, 왜 그가 이사회 회원들을 죽이지? 뒷골목에서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악에 가까운 모습이 아니던가? 그가 진정한 악이라면, 하이드가 살인을 저지르는 건 피를 보길 원해서라면, 왜 그는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지 않지? 하이드가 악이라면 왜 그는 세상의 악에 분노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걸까? 그가 악이라면, 왜?
그래요, 난 중심을 잡고 살아왔고, 우리 모두가 그렇죠.
그 괴물도 그래요.
비열한 세상에 복수심을 가지고 태어나서 세상을 유린하고는
거울에 서린 김처럼 사라져요.
하지만
미워하긴 힘들죠, 나니까
나의 또다른 나니까
왜 하이드는 이사회 회원들을 죽였는가? 그러면서 왜 그는 스트라이더와 덴버스, 어터슨은 살려두었는가? 이 단순한 의문이 이제서야 떠올랐다. 하이드는 지킬의 또 다른 자아였다. 그러기에 지킬이 증오하던 것들을 증오하고 지킬이 사랑하던 것들을 사랑했다. 하이드의 행동이 잔혹하게 보이기는 커녕 다정하게 보였던 건 나 역시 그 붉은 약에 취했기 때문일까? 위선자들을 모두 죽이고 싶었다면, 가장 가까운 사냥감은 바로 옆에 있지 않는가? 어떤 면에서 어터슨은 지킬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지만, 지킬에게는 가장 증오스러운 상대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자신 역시 위선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상대이고, 겉으로는 점잖은 신사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그 역시 위선자인걸. '가끔은 쉬어야 한다'면서 데리고 간 곳이 뒷골목 사창가라고? 게다가 그 곳의 마담이 그를 알아보고 반길 정도면 그 역시 종종 그 골목을 찾았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왜 하이드는 어터슨을 건드리지 않았지? 설마 어터슨의 칼이 무서워서는 아니겠지. 왜 하이드는 어터슨 앞에서 지킬을 끄집어 낸 거지? 어쩌면 그만은, 그만은 하이드까지 이해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그리고 왜 하이드는 스트라이더를 살려 둔 거지? 기차역까지 사냥감을 집요하게 쫒아가는 하이드가? 겉으로는 중재하는 척 하면서 지킬을 물먹인 그를? 혹시 그가 죽으면 엠마가 슬퍼할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루시를 죽이는 것조차 사랑받고 싶었던 그가, 자신이 가지지 못할 것이면 차라리 부숴버리고 싶어한 것처럼 보였다.(비록 나는 그런 사고방식을 납득할 수 없지만.) 그리고 잠잠하다가 결혼식에서 뛰어나혼 것 역시, 엠마를 속이고 결혼하는 것은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지킬의 무의식-즉 하이드의 마음-이 아니었을지.
돌아와서 화장을 지우고 문득 거울을 바라보았다. 흔드리는 내 눈동자 속에서 난 나만의 하이드를 본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어둠. 내가 그토록 없애고 싶었던 포악한 나. 그 존재가 푸른 이빨을 번뜩이고, 그르렁 거리는 그 숨결이 내 목덜미 뒤로 느껴진다. 그래, 너는 나, 나는 너.
검은 그림자가, 너를 휘감는다
검은 망토속에, 혀를 휘감는다
웃음 뒤에 칼날을 빼든다
뒤를 조심하라, 문을 단속하라
믿지 마라. 배신을 당할라
- Facad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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