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6.19 - 오늘은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제가 왜 간호사를 그만두려고 하는지에 대해 '간단히' 말해볼까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냥 아주 조금만, 제가 느끼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요. 사회에 나오는 후배 간호사님들이나 이제 막 사회에 나오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하게 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적응하고 일하다보면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올 초까지만 해도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는데 요즘에는 시간이 왜 이리 더디게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일해야 할 시간이 9개월이나 남아 있어요. 정말 매일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출근해서 참을 인을 수없이 되뇌며 일을 하다보니 일에 점점 질려갑니다. 이런 간호사가 있어서는 안 되는데 말예요. 그래도 환자 앞에서는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일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이전이라면 직장일을 하던 중 문제가 눈에 띄면 혀를 차거나 안타까워하기라도 했는데 요즘에는 '어차피 난 그만 둘 건데, 뭐'라고 넘어가게 됩니다. 일단 이렇게 그만두면, 간호라는 분야보다도 간호사라는 직업으로는 절대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다시 돌아올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요.
허기. 지독한 허기를 느낍니다. 워낙에 맛있는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입니다만, 요즘처럼 정신적/육체적으로 허기를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항상 시간에 쫒기다보니, 직장에서 밥을 먹을 때 10분 이상 들여서 맛을 느껴가며 식사를 해 본 기억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합니다. 식사를 할 때는 대화에 맞장구만 치며 정말 쉴새없이 밥을 꾸역꾸역 밀어넣습니다. 쫒기는 마음으로 허둥지둥 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먹는다기보다는 밥을 억지로 위장에 쑤셔넣고 뛰어올라옵니다. 병원 7층에서 지하 1층까지 내려가서 밥 먹고 올라오는 총 시간이 10분인 적도 있었어요. 그나마도 내려갈 여유가 없어서 무균실 안에서 밥을 먹게 되면 다 식고 퉁퉁 불은 반찬을 초 단위로 시계를 흘끗거리며 밀어넣다가 그 역함에 그대로 토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전 원래 식은 밥은 먹지 않았어요. 반찬이 한 가지 뿐일 때도 최대한 그 맛을 살려가며, 혼자 먹을 때도 정갈하게 차려먹는 걸 좋아했는데, 이런 생활은 여러모로 제게 타격을 주더군요. 이렇게 먹다보니 아예 근무 중에 식사하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와서 과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렇게 먹는 건 육체적인 허기는 어느 정도 채워줄지는 몰라도 정신적인 허기는 심하게 합니다. 마음이 그렇게 텅 비다보니 배가 부른데도 계속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정신의 허기는 더 심합니다. 병동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보니까 마음 붙일 곳도 없고 매일 출근하는 것이 제게 고문과 같은 상황에서 기숙사에서는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정말 제 몸을 혹사시켜서 한 24시간 이상 깨어서 움직인 다음에야 겨우 두세시간을 잔다기보다는 정신을 잃는 상태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또 억지로 일어나 멍하니 밤을 샙니다. 집에서는 하루에 20시간도 자는데, 기숙사에서만큼은 보통 자면 1시간 이상 잘 자지 못하고 많이 잘 때가 하루에 2시간 정도 자니, 도저히 체력이 버텨주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 정신분석을 해 볼 때, 병원과 관련된 곳에 제 의식과 정신과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말예요. 사실, 전 지금 병원에 관련된 것, 병원 마크, 병원과 비슷한 단어만 들어도 인상이 절로 찡그려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간호사는 꽤 있어요. 병원 마크만 봐도 진저리가 난다는 간호사들이요. 기숙사에 있기 싫어서 무조건 밖으로 나가는 간호사도 의외로 많습니다. 주변에서 당장 몇몇만 잡아서 이야기해 봐도 알 수 있는 걸요. 한 번은 일 끝나고 할증 붙은 택시를 타면서 제발 빨리 이 병원에서 멀리 달아나달라고 아저씨에게 사정한 적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네, 전 10월 면담 시즌을 간절하고 간절하고 간절하게 기다립니다. 거기서 터뜨릴 거예요. 그만둘 거라고. 신기하지 않으세요? 저 입사했을 때의 모습과 비교하면요. 제가 조금 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탈-적응의 과정을 밟고 있지만,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님을 전 알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곳이 그런 곳인지 아니면 병원이라는 상황이 좀더 특수한 건지는 모르겠네요.
배가 너무 고파요. 정말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