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o & Juliette
- 일시 : 2009. 7. 25(토) 7:30PM
- 장소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캐스트 : 신성록(로미오), 박소연(줄리엣), 이건명(벤볼리오), 에녹(머큐시오), 김승대(티발트), 강효성(레이디 몬태규), 신영숙(레이디 케퓰렛), 김진태(로드 캐퓰렛), 류창우(신부), 김현숙(유모), 임현수(영주), 김윤경(죽음), 앙상블&댄서(고원석, 장민김, 김신중, 박경수, 김진혁, 권용국, 김동현, 양승리, 허성수, 이호준, 황형순, 양정윤, 김윤희, 정목화, 황윤선, 김진숙, 박연주, 김동화, 윤보애, 박한희, 양혜정, 전선진)
- 연출 : 김덕남
- 번안가 : ?????
> 세 번째는 아니 만나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 절 잘 아시는 분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이 얼마나 제게 특별한 작품인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르시는 분도 제 블로그를 조금만 돌아보시면 제 블로그의 대부분이 뮤지컬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런데 절 그 뮤지컬의 수렁에 밀어넣은 작품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작품,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그런만큼 이 작품은 제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가진, 절대 싫어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전 이 작품을 우연히 만났고,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을 아직도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랑을 놀리고 이용하려고들 하지만요.(미쳤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티켓값이라거나 졸속으로 이뤄진 공연준비라든가...) 하지만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면, 전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눈물을 흘리면서도 또 다시 당신을 사랑하노라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 이 작품과 세 번 만났습니다. 첫 만남은 프랑스판 공연 DVD를 시작으로 하는 각국의 R&J와의 만남이었고, 두 번째 만남은 2009년도 내한공연이었으며, 세 번째 만남은 바로 이 한국어 공연이었습니다. 피천득씨는 말했었죠. '세 번째는 아니 만나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첫 만남은 사랑과 열정과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두 번째 만남은 충격과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경이와 더없는 전율로 이뤄진 만남이었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좋았느냐 싫었느냐라고 묻는다면 전 '좋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니까요. 하지만, 제 사랑으로 도저히 덮을 수 없는, 아니 사랑하기에 더 가슴아픈 면들이 있는 공연이 세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역시 세 번째 만남은 아니 만나는 것이 좋았을까요? 하지만 그렇다면 세 번째 만남에서 새로이 느낀 아름다운 점들은 볼 수 없었겠지요... 제 세 번째 만남, 그것이 초콜릿 상자라면, 제가 처음 집어든 초콜릿은 쓰디쓴, Bitter Chocolate이었습니다.
- 의상 & 분장 :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의상과 분장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의상과 분장 문제만이 아니라, '어떻게 라이센스 뮤지컬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문제였습니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라이센스로 올라간다는 말을 미리 전해듣고는 뛸 듯이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려되는 것은 '어떻게' 라이센스가 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로 처음 올라가는 무대가 어떠했는지 누누히 봐 왔거든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전 우리나라 뮤지컬계의 인적 자원만큼은 정말 세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로처럼 극장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흔하던가요? 우리나라 배우들이나 뮤지컬 스텝들의 열정은 또 어떤가요? 그런데 이상하게 '라이센스'로 올라가는 뮤지컬은, 그것도 조금 유명하다는 뮤지컬이 라이센스화 되는 경우에는 너무나 오리지널을 따라가려고만 합니다. 그 생각만 버리면 충분히 더 멋지게 만들어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라이센스 뮤지컬을 만들 때는 이미 한 번 검증된 작품을 변형한다는 이점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번안이나 한 문화를 다른 문화로 번안한다는 어려움은 결코 만만치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오리지널을 그대로 배껴오려고만 하는 건, 너무 안이한 것 아닐까요. 특히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우리나라에 팬층이 넓고 두터운 작품의 경우에는요.
찬스 코엑스 공연에서 제가 정말 기뻤던 것은, 오리지널의 매력은 그대로 살리면서 오히려 오리지널보다 훨씬 멋진 공연을 만들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오리지널의 '느낌'은 그대로 살리면서, 재치있는 연출과 무대 소품을 변화로 훨씬 아기자기하고 멋진 공연을 만들어냈지요. 하지만 그 작품을 보면서도 저와 R님이 경악한 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앙리'의 분장이었습니다. 앙리의 머리가 반쯤 '밀려'있었거든요. 무슨 말이냐고요? 오리지널 프랑스 캐스팅에서 앙리의 역을 맡은 제롬 프라동씨는 머리가 좀 벗겨진 분이라고 말하면 눈치채실까요. '그건 그 분이 원래 벗겨진 거라고요!!!'라고 써 놓은 R님의 후기를 보며 저 역시 굉장히 놀랐었고, 가까이서 본 우리나라 앙리의 파르라니 '깎인' 자국을 보고 멍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겁니다. 가끔, 너무 오리지널을 따라하다못해 '캐릭터'의 성격이 아닌, 그 '배우'의 모습을 캐릭터의 모습인 양 그대로 옮겨오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우습기까지 합니다. 참 이상하죠. 체코 뮤지컬 햄릿은 원작보다 훨씬 나았고, 우리나라 정서에 맞았으며, 체코 뮤지컬 삼총사의 라이센스 공연 역시 (전 보지 못했지만) 원작을 과감하게 바꾼 부분도 있었다는데 왜 유독 몇몇 작품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로미오와 줄리엣(이하 롬쥴)의 의상과 분장은 정말 오리지널 프랑스 뮤지컬, 그것도 2001~2002년이 아닌, 2007년 리바이벌 공연과 '꼭' 같습니다. 멀쩡히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진 배우에게 오리지널을 흉내낸 가발을 뒤집어씌워서 어떻게든 비슷하게 보이려고 만들었을 정도로요. '머큐시오'가 아니라 '존 아이젠'의 머리모양을 그대로 따라할 정도로 말이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입니다 똑같은데 전혀 똑같지도 않아요. 왜냐면 의상이 더 촌스럽고 소위 '싼티'나 보이거든요. 레이디 케퓰렛의 몸에 꼭 맞춰 재단된 것처럼 그녀를 옥죄는 코르셋처럼, 조각조각 기워진 그녀의 삶의 모습처럼 보였던, 말라붙은 검붉은 핏방울같던, 그녀의 핏빛 '피부'같던 의상은 어딘가 묘하게 뜬 것 같고 그 의상의 '이미테이션'으로 보입니다. 신부님의 단정한 검은 사제복은 동대문에서 떼 온 천을 대충 재단해 만든 것처럼 힘없이 늘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너무 프랑스 오리지널을 따온 것 같은 의상은 프랑스의 오리지널 무대와 '비교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실제로 저 역시 계속 무대를 보면서 프랑스 오리지널 무대와 오리지널 배우들이 계속 떠올라서 '아, 이건 저랬지. 저건 이랬지'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었으니까요. 예산의 문제일까요? 그렇가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르게' 만들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 헝가리 롬쥴의 무대는 라이센스 뮤지컬의 교과서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보지 못하고 그저 들었을 뿐이지만 네덜란드 JCS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고요. 같은 가사, 같은 음악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비록 제가 2001~2002년의 무대를 2007년의 리바이벌 버전의 무대보다 사랑하지만, 2007~2009년의 무대와 의상, 분장은 정말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의미들이 담겨있습니다.(나중에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요. 물론 이것 역시 제 특유의 '과장된 해석'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함부로 의상과 분장을 바꾸지 못한 것이라고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쉽게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검은 머리의 줄리엣은, 제가 지금까지 본 모든 줄리엣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막 베인 상처에서 흐르는 선홍빛 피 같은, 이제 막 피어나는 장미처럼 붉은 의상 위로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는 고혹적이기까지했어요. 그런데 레이디 캐퓰렛의 금발 가발은 정말이지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그 가발의 '의미'를 살리고 싶었으면, 검게 틀어올린 가발은 어땠을까요? 아니면 의미를 살리되 어울리게 높게 틀어올려 꽉 죄는 머리 장식들로 조여진 머리모양은요? 예를 들어 비녀를 교차시키고 흐트러지지 않게 핀을 찔러 고정된 머리는요? 그게 훨씬 더 우리나라 배우의 얼굴에도, 분위기에도 잘 어울렸을텐데요. 그 가발만 붕 떠 보이잖아요.
하지만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 더 나아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줄리엣의 망토는 오리지널 의상에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었는데, 그것은 더 좋게 변했더라고요. 연보라색과 붉은 색이 묘하게 안 어울린다고 느꼈었거든요. 물론, 그 의상을 만든 분이 저와 같이 '안 어울린다'는 것만 생각해서 바꾼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왕이면 그 색의 '의미'까지 생각해서 줄리엣의 선홍빛 옷에 어울리는 짙은 보라색으로 해 줬더라면 훨씬 좋았겠지만 말이에요.
- 번안 : 제가 한 작품에 대해 기록을 남길 때, 꼭 포함시키는 것들이 있습니다. 공연을 본 날짜, 공연장, 캐스팅이죠. 그 외 스텝에 대해서 기록을 남길 땐, 그 스텝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인 부분이었다거나 아니면 작품이 너무 좋아서 스텝 한 사람 한 사람까지도 꼭 기억하고 싶을 정도인 경우입니다. 굳이 '???????'까지 넣어가며 언급한 건, 이 분이 제게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줬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제게 굉장히 소중한 작품입니다. 제가 그 작품의 오디션부터 관심을 가지며 작품의 탄생과정을 지켜본 작품은 딱 두 작품입니다. JCS와 이 작품이죠. 그런데 제가 이 작품의 오디션 악보를 받아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 번안가님도 (누군지는 아직 모르지만) 번안을 해서 '돈'을 받았을테고(그리고 그 돈 충당에 제 티켓값이 들어갔을 것이고), 이것이 직업일텐데 어째서 '이렇게밖에' 번안을 하지 못한 겁니까? 프랑스어와 우리나라 언어의 차이라고요? 햄릿의 가사는요? 프랑스어보다 더 이질적인 '체코어'로, 운율에 맞추어, 타이밍에 맞추어 번안으로 시를 써 내려갔는걸요? 같은 프랑스어라면 노트르담 드 파리의 경우는 어떤가요? 노트르담 드 파리의 번안은,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번안이라면 당연히 감안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생각보다 훌륭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클로팽의 가사들은 써 놓고 몇 번을 음미해 보며 감탄할 정도였어요. 돈 주앙의 가사도 생각보다는 잘 번역했고, 어떤 부분은 가사의 울림이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캣츠의 번안도 그렇더군요. 어떤 부분들은 참 위트있어서 어쩜 저렇게 멋지게 번안했냐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우선 이 작품은 가사와 음이 맞질 않아요. 한 음절이어야 할 부분에 한 단어가 들어가느라 다다닥 발음해야 해서 누가 들어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계속 나타나는데다가 그나마도 제대로 번안하기는 커녕 아예 다른 뉘앙스를 주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네, 저 솔직히 이 번안가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번안했는지 모르겠더군요.
다른 뮤지컬팬들이 라이센스에 뮤지컬에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빙판 뮤지컬'이라거나 '자막 읽을 필요 없는 뮤지컬' 이상의 것을 원한다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롬쥴 라이센스를 보러 오는 관객들 중에 2001년 롬쥴은 물론 세계 각국의 롬쥴들을 봐 온 관객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까요? 아니, 적어도 2007~2009년의 오리지널 프랑스 롬쥴을 본 팬들이 다수일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당연히 내용을 알 테니 대충 번안해도 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어떤 부분은 아예 노래인 부분을 대사처리한 곳도 있더군요?
전 프랑스어는 하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프랑스어로 들어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동으로 의미가 머리속에 그려지고, 그 무대가 떠오르니까요. 주요 곡들, 그러니까 Un jour나 Amier, Le Roi du mond, Sans Elle, Mort de Romeo같은 경우는 (제목을 외워서 쓸 수 있음은 물론) 어설프게나마 따라부를 수도 있어요. 제가 이럴진대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에 대해 '꿰고'있을까요? 그런 관객들에게 설마 이 번안으로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요. 특히나 'J'a Peur'의 경우는 아예 로미오가 딴 소리를 하고 있어요. 네, 이 작품의 번안 수준은 초벌 번역을 그대로 음악속에 억지로 '우겨넣은' 수준입니다. 모국어로 듣기 때문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바로 느낄 수 있는' 라이센스 뮤지컬의 장점이 하나도 안 살잖아요! 전 라이센스 뮤지컬이, '모국어로 공연되는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랑합니다. JCS도 그랬도 NDP도 그랬어요.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가슴으로 먼저 와 닿는 가사'들이었기에, 라이센스 뮤지컬을 보며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 이 작품은, 네. 그랬어요.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알고 거부하는' 가사였다고요! (자, 여기서 혹여나 '그럼 니가 해 보던가'라는 말이 나올지 모르니 미리 말해둡니다. 제가 번안가인가요? 제가 그걸로 돈을 받나요? 요리에 대해 평을 하려면 그 요리를 만들 줄 알아야 하나요?)
그나마 다행인 건, 항상 라이센스 뮤지컬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경이롭게도 그 가사를 가지고, 연기로 배우들이 그 부족함을 상당부분 메워주고 있다는 점일까요. 번안가님께는 죄송하지만, 한국어가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언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른 나라 롬쥴 팬들에게, 우리나라 라이센스 버전은, 배우들의 노래만 들으면, 음과 가사가 안 맞아서 거슬리는 부분 외에는 괜찮게 들릴테니까요.
- 연출 : 마지막입니다. 사실 연출에 대해서는 장면장면마다 따지고 싶은 점이 참 많은데... 이 분에게 느끼는 감정은 제가 Gerard Presgurvic씨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어줘서 고맙고, 그것을 망쳐줘서 섭섭하다'인데, 연출님께도 비슷합니다. '롬쥴 한국 공연을 올려줘서 고맙고, 왜 이렇게밖에 못하셨는지 섭섭하다'예요. Gerard Presgurvic은 2007년 공연에서 뚱뚱해를 넣고 거리의 소문을 뺌으로써 절 경악시켰고, 연출님은 조연 및 앙상블들의 매력을 빼고 Demain을 뺌으로써 절 경악시켰습니다. 이 연출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정말 잘 살렸는데 나머지 캐릭터들의 성격은 무참하게 깎아버렸더군요. 각자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프랑스 뮤지컬과 상당히 비교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오리지널보다 훨씬 나은 캐릭터들도 있었지만, 전 그게 연출의 힘보다는 배우의 힘으로 보이거든요. 한 배우의 작품을 계속 보다 보면, 어느 것이 연출의 힘이고 어느 부분이 배우의 힘인지는 어렴풋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대에서 보고 감탄했던 그건.......연출보다는 배우의 힘이예요. 정말 연출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때는, 무대 위에 한 '세상'을 창조해 내는 것을 볼 때입니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처럼요. 그건 정말 연출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죠. 무대 위에는 주인공도 있고 조연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면 안 돼요. 무대 위에는 주인공이 있을지 몰라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어요. 아무리 작은 배역이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갖게 만드는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래서 그 무대가 가상현실이 아니라 정말 실제 삶일지도 모른다고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정말 연출의 힘입니다.
시인과 권력을 뺀 건 좋았지만, 사실 별로 크게 칭찬할 수는 없는 게, 그건 조금만 작품을 좀 봤다 싶은 사람들 눈에는 군더더기라는 게 바로 보이는 부분이거든요. 실제로 많은 판본에서 그 부분을 빼고 있고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진짜 '이런 게 연출이구나!'라고 전율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헝가리판에서의 '광기'가 흘러나오는 부분이었어요. 프랑스 스튜디오 음반에만 있고, 실제 무대에서는 쓰이지 못한 그 넘버를, 없어서는 안 될 장면처럼 만든 헝가리 판. 그것이 바로 연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까지는 혼자 붕 떠서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 넘버가 그렇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어요. 그 장면에서 전 베로나를 감싸고 있는 '광기'를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판본을 보고 Gerard Presgurvic도 그 노래의 '힘'을 깨닫고 2007년 버전에 삽입한 것은 아닐까요?(이건 순전히 제 추측일 뿐이지만요)
D"님은 연출가님께서 감히 '희곡과 프랑스판 DVD 영상은 봤는지도 의문'이라고 하셨더랬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혹시 2007~2009 프랑스판 외의 판본들은 본 적이 있나 궁금합니다. 깨질 것 같아서 더 아름다웠던 빈판의 로미오는 본 적이 있나요? 처절하게 피를 토해내며 죽어갔던 라스무스의 머큐시오는 본 적이 있나요. 어떤 죽음보다 '무서웠던' 러시아판의 죽음과 어떤 아버지보다 애절해서 노래를 듣는 순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던 러시아의 로드 캐퓰렛은요? 계속해서 배신당함에도 자신의 도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벨기에의 영주님은 아시나요? 사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집착이 된 헝가리의 티발트는 아시나요? 어두운 '죽음'이 아니라 '운명의 여신'으로, '초월적 존재'로 느껴지던 오리지널 프랑스판의 죽음은 보셨나요. 혹시 '로드 몬태규'가 있었던 적이 있다는 건 아시나요? 죽음이 없는 판본도 많다는 건요? 증오의 불길에 휩싸여 귀부인임에도 손에 거울을, 빗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온 헝가리의 마님들의 외침은 들어보셨나요. 어쩌면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롬쥴과 연출님의 롬쥴이 다른 것일 뿐인지도 몰라요. 그런 걸 거에요. 그런 거겠죠. 연출님. 연출님의 다른 무대들도 몇 번 봤지만 드라큘라나(거기도 의상은 별로였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요.....(아님 제가 아는 만큼 보여서 그런 건지..)
초콜릿 박스에서 꺼낸 첫 초콜렛은 100% 다크 초콜릿, 제게는 너무 쓰더군요. 사랑한만큼,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어 슬펐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사랑합니다. 정말로 그들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슬프고, 실망했다기보다는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사랑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당장 내일 최악의 날이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일해서 피곤함이 몸을 덮치는데, 글 쓰는게 결코 간단하지 않는데(비록 이 글이 제 감정의 토악질일 뿐이라도) 이렇게 글 쓰고 있지는 않았을거예요. 그러니까 이 글은 그냥 자기만족을 위한 글이예요.
혹여, 혹여 혹여 공연 관계자분이 제 글을 읽으신다면 제가 왜 그렇게 신랄하게 로미오와 줄리엣 라이센스 공연을 먼저 비판했는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이 안타까움을, 슬픔을 먼저 털어내고, 정말 좋아하노라 말하고 싶었던 마음을. 혹시라도 저 글을 먼저 보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멋진 작품에 대한 편견을 가질 사람이 있을까봐 뮤지컬 관련 글을 쓰고도 저 글만은 밸리에 보내지 않고 제 개인 블로그 글로만 쓴 마음을. 그리고도 노파심에 이렇게 짧은 사족을 달고 있는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