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Shook Up- 일시 : 2009.9.17 8PM
- 장소 : 충무아트홀 대극장
- 출연 : 손호영(채드), 박은미(나탈리), 김성지(짐), 이정화(실비아), 최민철(데니스), 구원영(산드라), 박준면(시장 마틸다), 이종성(보안관 얼), 왕브리타(로레인), 하강웅(딘), 앙상블(서만석, 서상현, 이경두, 김보현, 박경동, 강희범, 구본근, 김성수, 천상민, 임혜성, 박수진, 최유리, 연보라, 박선정, 소정화) : 요즘에는 끝도없이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것을 느낍니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짜증이 쉽게 나더군요. 참을성은 점점 떨어지고요. 호르몬의 영향도 있어서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던 차, 새벽에 하나 남아있는 좋은 좌석을 보고 충동적으로 보고 온 작품입니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었어요.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마침 제가 이 작품을 본 날, 병동이 무척이나 바빴기 때문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겨우겨우 공연시간에 맞춰 뛰어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묵직하게 몸을 짓누르는 피로를 느끼며 '졸지나 말자'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 즐겁게, 즐겁게, 그저 즐겁게! :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작품은 무척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작품이 그렇죠, 뭐. '맘마미아'가 단지 아바의 노래를 모아 만든 것이 아니라 드라마적인 요소 역시 강하다면, 이 작품은 '그리스'와 같은 느낌입니다. 그저 즐거우면 된 거라는 느낌이요. 그래도 이 작품은 꽤 '잘 만들어진' 쥬크박스 뮤지컬입니다. 노래가 들어가되, 내용이 어색하지 않으며, 노래가 억지로 들어갔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으니까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좋아하는대로 흥겹게 즐길 수 있고, 모르면 모르는대로 좋은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여기에 나오는 노래 중에 제가 아는 곡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위한 장면'이라는 느낌보다는 잘 만들어진 뮤지컬 곡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뮤지컬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채드'라는 촉매가 떨어지면서 그 동안 엉켜있고 천천히 진행되던 '사랑'이 시작된다는 그런 내용이예요. 그런만큼 이거 짝을 찾아가는 재미와 커플링시키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비록 비현실적이고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요. 음...그러니까 이거 정말 판타지 '만화'를 보는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정숙법'이라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의 동작이라든가 반응이 딱 명랑만화같달까요. 그 중에서도 가장 '만화적인' 캐릭터는 시장 마틸다겠죠! 무대 위에서 마틸다의 움직임, 몸동작, 표정이 어찌나 '캐릭터'스러운지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했어요. 어우어우, 얼마나 귀엽다고요. 무섭게 빽빽 고함을 지르고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주눅이 들지만 그 모든 장면들이 귀엽습니다. 전 그래서 은근히 시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어요. 마지막에 얼이 '당신, 우리 엄마 닮았어. 사랑해'라는 황당한(?) 고백을 받고 '여자'가 되는 모습도 귀여웠어요.
하지만 역시 귀여움의 최고봉은 로레인이예요. 헤어스프레이 때 처음 뵈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 분은 정말 귀여우세요. 목소리도 시원스럽고 발그레한 볼과 수줍은 미소가 어찌나 깜찍한지! 게다가 은근한 추진력까지 겸비했죠. 아마 딘은 로레인에게 꽉 붙들려 살 걸요? 행복하게 붙들려 살 겁니다. 으하하.
짐과 실비아는 잘 살 거예요. 아마 짐은 평생 구박을 당하긴 하겠지만요. 그래도 분명 이전보다는 잘 살 겁니다. 실비아가 알뜰살뜰 챙겨줄 테니 말이예요. 이정화씨는 정말 멋진 실비아였어요. 밴티트의 고래아줌마가 이런 모습이라니! 전 프로그램북에서 볼 때까지 알아차리지도 못했어요. 'There's Always Me'는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 넓은 무대를 꽉 채우며, 빛나고 있었어요. 순간적으로 전 '아, 누가 해도 이 분 이상의 실비아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나저나 이영미씨가 이 역을 하신다는 거죠?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는 걸요. 조금 어수룩한 어머니이자 억척스러운 술집 여주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실비아의 모습에 어쩐지 짠해졌어요. 짐이요? 귀여웠죠. 다른 캐릭터들처럼요. 김성기씨는 귀여운 캐릭터를 참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주인공보다 더 좋아했던 커플은 데니스-산드라 커플이었습니다. 소네트의 아름다움을 아는 커플이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천사의발톱'에서도 주인공 못지 않게 눈에 띄던 분이셨는데, 과연 무대 장악력이 굉장하시더군요. 가장 능수능란하게 '연기'하시는 분이셨어요. 무대에 있으면 눈에 띄고, 에드에게 들러붙는 연기를 어찌나 능청스럽게 보여주시던지 그냥 서 있는 건데, 그냥 조금 몸을 움직이는 건데 저도 모르게 시선이 빨려들어갑니다. 압도적이었어요. 무대 위의 누구보다도 눈에 띄던 분이었습니다. 최민철씨의 데니스도 그랬어요. 익히 이 분의 노래가 얼마나 멋진지 느끼곤 했기 때문에 조금 더 넘버가 많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었지만, It Hurts Me 한 곡만으로도 넋을 놓고 보길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뒤에 촉촉한 안개가 깔리는 것 같은 곡이었어요.
기대를 안 했던 두 주인공들은 의외의 호연을 보여줬습니다. 먼저 나탈리의 박은미씨는 이전에 무대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분인데(드림걸즈를 보긴 했지만, 그 날은 디나가 메인이었거든요) 풋풋한 나탈리/에드를 잘 보여줬어요. 이 나탈리가 처음으로 귀엽다고 느낀 건 'Love Me Tender'장면이었어요. 그 전까지 나탈리가 채드를 쫒아다니는 게 사실 그렇게 귀엽게만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냥 이유도 없이 '멋있다는 것'만으로도 목을 매는 거잖아요.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버럭!) 어쨌거나 신인이라 그런지 풋풋한 느낌이 물씬 나는 분이었는데, 이게 나탈리의 캐릭터와 참 잘 어울리는 거 있죠? 솔로파트들에서 특히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Love Me Tender'만큼 나탈리가 귀여워 보이는 때가 또 없어요. 오히려 노련한 배우라면 이런 느낌은 좀 덜 할 것 같아요. 어딘가 어설픈 남장도 귀엽고, 그런 자신에게 만족해서 잔뜩 들떠 빽빽(...) 노래하는데, 그게 귀엽게 들리더라니까요. 꼭 어린아이가 어머니 화장품을 몰래바르고 어설픈 화장을 하고 뽐내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들어서, 아구아구 그래쪄요? 라고 쓰다듬어주고 싶어지더군요.
손호영씨는 과연 아이돌 유경험자라서 그런지 능글맞게 무대를 끌어갑니다. 노래도 꽤 좋았어요. 대사 할 때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조금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채드였습니다. 특히나 C'mon Every Body 같은 곡의 경우에는 나서서 신나게 이끌어가는데 이 노래가 호영씨에게 참 잘 어울리더군요. 대사가 꼬여서 버벅댔을 때도 당황하기는 커녕 객석을 보면서 씨익 웃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그 웃음에 따라 웃었습니다. 과연 무대 경험은 다르긴 다르더군요. 게다가 사실 눈도 정말 즐거웠고요(...) 아니, 정말 눈이 참 즐겁더군요. 저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가는 게 느껴졌어요. 특히 2막에서 수영하러 갈 때 장면에서요. 저만 그러게 아니라 '그 장면'에서 주변 여자관객들이 나이 상관없이 조용히 술렁이는 게 피부로 따끔따끔 느껴지더라니까요.
음악 이야기도 해 볼까요? 이 노래들이 정말 한 남자가수의 노래들이 맞나 싶은 곡들이 참 많았습니다. 뮤지컬을 위해 새로 작곡된 곡들 같이 느껴지는 것들도 있었고, 익히 알고 있는 곡임에도 '어? 이거 맞나?' 싶을 정도로 편곡이 된 곡들도 있었어요. Teddy Bear-Hound Dog처럼 두 노래를 중창처럼 겹치게 한 장면도 있었고요. 음악이 참 좋더라고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베스트 앨범을 무심코 질러버릴 뻔 했을 만큼요. 천 원만 안 모자랐으면 사 왔을텐데 말이지요. Love Me Tender가 그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어요. 저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곡이라 이 곡은 사랑 고백이나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쓰일 줄 알았는데, 어리버리한 유혹송으로 쓰이다니. '어? 이건 반드시 통하는데...?'하며 벙 쪄 있는 채드의 모습에는 저도 푸풋, 웃음이 터졌어요. 제가 가장 좋아했던 곡은 Can't Help Falling in Love였습니다. 공연을 본 날 워낙 몸이 안 좋아서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있었는데 1막 마지막에 이 곡이 나오자 정신이 번쩍 들고 쌓였던 피로가 확 날아가는 게 느껴졌어요. 이 곡이 엘비스의 곡이었다니요! 예전에 피아노를 쳤을 때, 알게 되어서 종종 치곤 했던 곡이었는데 이 곡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어쩐지 그리운 느낌마저 몰려왔습니다. 참 아름다운 곡이예요. 참 행복했습니다. 그 철모르던 시절의 기억도 되살아나고, 피아노를 치던 순간의 느낌도 살아나고, 곡 자체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그냥 이 노래가 나오는 순간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10분간의 커튼콜입니다. 사실 이 커튼콜 때문이라도 한 번 더 가고 싶어요. 공연장에서 인터미션 때 파는 야광봉을 사서 같이 놀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배우들의 신호에 맞춰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면서 함께 놀다 보면 어느 새 시간이 훌쩍, 끝나고 맙니다. 커튼콜 때 오랜만에 이렇게 달려보는 것 같아요.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쌍쌍이 행복하게 짝을 찾고, 사랑한다 말하고, 음악에 맞춰 잠깐 현실은 내려놓고 그저 즐거워하는 것이요. 즐거웠습니다. 그거면 됐죠.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