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사랑-C.S 루이스(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은이) | 이종태 (옮긴이) | 홍성사(출판) : 그저 그 사람의 글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고 좋은 작가들이 있는데, C.S 루이스는 내게 그런 작가들 중 하나이다. 그의 책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집어들만큼 말이다. 루이스의 글을 읽다보면 우선 그 논리에 감탄하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그 문체에 감탄하고, 분석에 감탄하고 그 사고방식에 또 감탄하게 된다.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변증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글을 읽다보면 굉장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종종 그의 주장에 이의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 논리와 체계에는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루이스의 글이 갖는 힘이 아닐까.
솔직히 루이스의 저서들은 읽기 쉬운 글들은 아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이 책은 내 부끄러운 점을 너무 적나라하게 지적해서 읽기 힘들어'라는 것보다 책 자체가 속도가 나지 않는 것있다. '나니아 연대기'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같이 속도가 빠르게 나가는 것도 있지만, '고통의 문제' '헤아려본 슬픔' '순전한 기독교'와 같이 속도가 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혹은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단어들에 내가 익숙해지지 못해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 역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이게 두 번째 읽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S 루이스의 책은 더없이 좋다. 읽고 있으면 절로 정신이 깨어나는 것이 느껴지고, 그와 진지한 '토론'을 해 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그의 통찰을 담았다. 먼저 '유사성'과 '접근성'으로서의 '닮음'에 대해 정의하고 , 사랑을 두 종류(필요의 사랑/선물로서의 사랑)로 나눈 다음, 그 정의를 바탕으로 애정/우정/에로스/자비가 가지는 속성과 각각의 사랑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얼마나 (유사성/접근성의 의미에서) 얼마나 '닮았'는지, 각각의 사랑이 갖는 위험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는데, 애정에서는 공감했고 우정에서는 웃었고, 에로스에서는 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자비에서는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가장 심하게 반발하며 읽은 '우정'파트에서는 과연 그가 '옛 영국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우정'만큼 남/녀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사랑이 또 있을까! 루이스는 우정을 철저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랑이라고 정의하며, '그 사람 자체' 보다는 '공통의 관심사'가 중심이 되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여자라 그런가, 나는 우정에서도 에로스(남녀간의 사랑)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여자들의 우정은 에로스의 사랑만큼이나 '배타성'이 있어서, 타인이 그 '결속'을 깨뜨리는 것을 원치 않으며, 때로 그것은 그러한 외부의 힘에 대해 굉장한 공격성을 보이게 되기도 한다. 남자들은 안 그런가?;;
> 밑줄긋기 즉, 그 사랑 안에 증오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만일 사랑이 삶의 절대 주권자가 되면, 그 씨앗은 발아하기 시작합니다. 신이 되어 버린 사랑은 악마가 됩니다. (P.101)
가장 깊이 공감한 말이자 가장 뜨끔한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주변 사람을 옭아매고 있었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내 행위를 정당화 시켰는가. 얼마나 그 사랑을 지속시키려고 노력했는가,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내 사랑은 얼마나 쉽게 변질되었던가. 오히려 그런 '노력'을 포기했을 때 얼마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계가 되었던가.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아픔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부서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얽히는 관계를 피하십시오. 마음을 당신의 이기심이라는 작은 상자에만 넣어 안전하게 잠가 두십시오. 그러나 그 작은 상자 안에서도 그것은 변하고 말 것입니다. 부서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깨뜨리고 뚫고 들어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P.207)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하라고, 마음이 부서질지도 모르지만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울컥,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울리면서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는 누구나 있는 그대로는 사랑받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전혀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는, 오직 사랑스러운 것만이 사랑받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 사랑스럽지 못한 것을 사랑해 달라는 말은, 썩은 빵이나 드릴의 소음을 좋아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P.225)
누군가가 날 '온전히' 좋아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난 얼마나 어리석었던가.(적어도 대학교 3학년 때까지는 저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글쎄, 아직도 날 좋아하고 나만을 바라봐 줄 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그건 순정만화나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그런 사랑과는 조금 다른데, 난 신의가 있는 사람, 감정이 식은 뒤에도(반드시, 반드시 그 뜨거운 감정은 식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연애 경험이 없다 한들 그것도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그 관계를 지속할 노력을 기울일 줄 아는 사랑, 자기 자신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기에 나의 부족한 점 역시 인정해 줄 줄 아는 사랑, 그러면서도 서로의 단점들을 고치기를 격려해 줄 줄 아는 사랑, 그러니까 결국 내 평생의 '동맹자'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은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참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난 내 상대가 외로움을 깊이 느끼고, 그 외로움이 얼마나 추울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되, 그 외로움에 지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있을 때는 잠깐, 그 외로움을 '잊을' 수는 있지만 100%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는 걸 머리로 말고 '가슴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라면 믿고 함께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이 외로움을 모두 잊게 해 줄 거라 기대한다면, 그는 결국 나에게 실망하고 다른 사람을 찾게 될 테니까. 장담하건데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외로움을 단 1g도 덜어줄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