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Bach, Cello Suite No.1-1, Prelude- by Mischa Mai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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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자기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연한 진홍빝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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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부터 이 시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해서 수시로 읽으며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종류의 좋아함이 아니라, 가끔 우연한 곳에서 마주치면 가만히 미소짓는 좋아함이요, 여름날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며 '그리운 이여, 그라면 안녕!'을 나직이 중얼거려보는 좋아함이다. 친구가 내게 보내준 편지를 한 장 한 장 인쇄해서 묶어놓은 클리어파일의 마지막 장에 나는 이 시(詩)를 갈무리해 넣었다. 어째서였을까. 그건 아마 시의 초반에서 느껴지는 그 잔잔한 감성 때문은 아닐까.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벅차오르지도, 심하게 요동치지도 않지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게 되는 것은 저 '편지'라는 단어에 담겨 있는 나의 감상 때문일 터이다. 아직도 문자나 통화보다는 메일을, 중요한 날이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경우 서툴더라도 손으로 쓴 편지를 선호하는 나의 감성은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졌을지는 몰라도 과히 나쁘지만은 않아도 스스로 위안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은 더없이 낭만적이면서도 바흐의 음악이 언제나 그렇듯, 나를 감성과 이성사이의 어딘가로 데려다준다. 꼭 이 시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가을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 또 있을까.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것 같고, 사각사각, 종이에 연필이 스치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다. 거기에 더없이 따뜻한 첼로를 연주하는 미샤 마이스키의 음색은 그런 느낌을 더욱 크게 한다. 어쩐지 오늘은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써 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마지막에는 꼭 이 말을 넣어야지. 아아,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2009.11.6,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