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쩌다 로맨스(Isn't It Romantic) 보고듣고(감상)


 예고편만 보고도 난 내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줄 알았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았다. 단순히 로맨스 코미디 비틀기라고 생각했는데 결론까지 깔끔하게 맺은, 멋진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로맨틱 코미디 비틀기는 유쾌하다. 정말 계속해서 시원하게 웃을 수 있다. 동시에 이 영화는 로맨스의 공식에 충실하기도 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서는 어떻게 될지 눈에 보이고, 결론도 어떻게 낼지 대충 예상이 가니까. 이 영화 자체가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서 이건 결코 흠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로맨스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여주와 남주가 있고, 끝에는 그게 비극이근 해피 앤딩이든 둘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그 사이를 둘의 에피소드로 채우면 된다. 하지만 이걸 제대로 해 내는 작품은 또 많지가 않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굽이 굽이 잘 가꿔놓은 정원을 걷는 기분이었다. 말로 잘 설명이 안 되는데 각본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썼지? 나는 로맨스 이야기를 초콜릿 아이스크림 퍼 먹는 기분으로 보는데, 초콜릿이 다 같은 초콜릿은 아니거든. 

 게다가 주인공이 정말 매력적이다. 평범해 보이던 주인공이 점점 빛이 나는데 그게 참 눈부셨다. 어느 순간 그녀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큰 위안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말로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 영화는 탁 건드리고 알아주는 기분이어서 마지막에 진심으로 후련해졌다. 

 

 나는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한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탈코르셋이 꼭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에 단발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뚱뚱한 여성이어서 예쁘지 '못하고', 예쁘지 못하니 꾸밀 수 없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늘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다니고 머리도 그냥 하나로 묶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과 별개로 나는 예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차마 입을 용기를 내지 못했던 짧은 치마와 몸에 붙는 원피스를 입기도 하고 이전에는 차마 도전해보지 못하던 베이비 핑크의 옷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가끔 그렇게 입고 대개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고, 직장을 갈 때도 화장을 하는 일이 없으며, 대개는 그냥 편한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다닌다. 이전의 티셔츠 차림과 지금의 티셔츠 차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여성은 사회적으로 꾸밈을 강요받는다'는 말도 (특히 과체중인 여성들이 말하는) '꾸미는 것도 일종의 탈코르셋이다'라는 말도 이해한다. 과체중인 여성이 꾸미는 것이 때로는 보통의 여성이 면접장에 화장을 하지 않고 운동화 차림으로 가는 것과 맞먹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거든.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 '그것이 바로 주체적 코르셋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게 해방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라는 속담도 있는 나라다. 과체중 여성은 자기 눈에 예뻐 보이는 옷을 살 권리도 없다. 꾸미고 싶을 때는 꾸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그것이 귀찮고 힘들어져 그만 두고 싶을 때는 역시 눈치보지 않고 그만 둘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유다.

 난 이 영화가 시각적으로 이 과정을 정말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평범하고 자신없고 자신이 만든 벽 안에 갇혀있던 주인공이 당당해지고 빛나는 모습이 좋았고, 감동적이었다. 현실에서 저런 주인공이 있다면 한 번의 계기로는 분명 부족할 것이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또다시 찾아오는 자기 혐오에 허덕일 때도 있겠지. 하지만 일단 다른 세상을 본 주인공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이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향한 응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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